누구나 박문수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암행어사 출두야’를 연상하게 한다. 박문수는 조선 영조 때 청백리이며 암행어사로 많은 이야기를 남긴 분으로 묘소는 지금의 천안독립기념관 동쪽에 위치한 은석산(456m)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 묘소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지고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조선조 박문수가 어사로서 무주구천동에 갔을 때 그곳의 부사인 천운서(千云西)의 횡포를 징벌로 다스리고 유안거(兪安居)라는 선비의 억울함을 풀어주었다.    유 선비는 이 은혜를 잊지 못하다가 세상을 떠나게 되고 후일 박문수가 다시 암행어사를 제수 받아 호서(湖西)지방을 순행하던 중 어느 산길에 접어들었는데 백발노인이 홀연히 앞에 나타나 큰절을 올리며 아뢰는 것이었다. “어사님! 그간 무고 하셨습니까? 소인은 어사께서 저의 억울함을 풀어주신 무주구천동의 바로 그 선비이옵니다. 살아생전 그 은혜를 갚지 못해 애통해 하다 죽어서나마 한 가지 보은을 하고자 이렇게 나타났으니 아무 허물 마시옵고 소인이 인도하는 데로 따라와 주십시오.”하여 따라간 곳이 지금의 천안독립기념관이 있는 흑성산 자락이었다는 야사가 전한다.   이곳 흑성산은 풍수에서도 대길지로 꼽히는 금계포란형국(금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의 명당자리였다. 박문수는 생을 마치고 이곳에 자신의 묘를 쓰려고 했으나 얼마 후 유명한 지관이 그 장소를 보고는 이곳은 훗날 나라에서 귀하게 사용할 자리이니 그때 가서 이장을 하는 것 보다 동편으로 바로 옆에 있는 은석산 중턱(지금의 묘소자리)으로 묏자리를 권하였다고 한다.   은석산은 풍수 형국론으로 보아 장군대좌형이다. 원래 풍수에서의 형국론이란 산천의 생긴 모양을 보고 사람이나 사물 또는 동물이나 식물, 문자 등 어떤 형상에 비유하는 것을 형국론이라 한다. 이 이론은 산천의 겉모양과 그 안의 정기는 서로 상통한다는 관점으로 보아 그 지형의 안에 있는 음·양택지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형국은 단독으로도 성립이 가능하나 대부분 서로 짝이 이루어져 대응함으로써 완성되어야 길하다. 예컨대 뱀 형국에는 주위에 그의 먹이가 되어줄 쥐나 개구리 모양의 바위나 사(砂)가 있어야 되고 와우형에는 소의 먹이가 되어줄 볏짚더미나 구유에 물이 있어야 짝이 되어 진혈로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곳은 장군대좌형으로 마치 장군이 진영을 둘러보며 단정히 앉아 있는 모습의 형국인데 주위에 병사를 뜻하는 작은 바위나 봉우리들 혹은 창, 칼, 말(馬) 등과 같이 장군에 걸 맞는 모양의 형상이 있어야 진혈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이곳은 은석산 밑에 병천시장(아우네 장터)이 있고 시장에는 항상 사람이 많이 있으니 그것을 병졸로 보아 나름대로 장군대좌형의 짝을 이루었다고 본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외적들이 이 시장을 강제로 없애려고 하였으나 고령박씨 문중에서 죽을 각오로 반대를 하여 현재까지 보존되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 묘소는 귀신이 어사께 보은하기 위해 잡아줬다는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 묘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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