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격렬함이 가슴을 파고든다. 거실 한 켠에 놓인 레코드에서 흘러나오는 오케스트라의 현악기와 관, 타악기들이 쏟아내는 음들이 집안 가득 울려 퍼져서이다. 이 음악을 귀 기울여 듣노라니 마치 갑작스럽게 닥친 운명에 절규라도 하는듯한 음악 첫 도입 부분이 매우 인상적이다. 베토벤의 5번째 작품인 ‘운명’ 교향곡이 그것이다.
 
이 음악에 매료돼 작품의 1악장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곧바로 4악장을 재생했다. 나는 ‘운명’ 교향곡의 전 악장 중에서 4악장을 제일 좋아한다. 다른 악장들 보다 4악장을 듣고 있으면 왠지 모를 환희에 찬 기분과 성공 궤도에 오른 훗날 내 모습을 한껏 상상하게 되곤 해서다. 그래서 알 수 없는 카타르시스까지 느껴져서 이 음악에 자연스럽게 내 마음이 매료되곤 하나보다.
  베토벤은 독일의 작곡가로 합창 교향곡 뿐만 아니라 여러 악기들에 관한 곡을 작곡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교향곡 작품들이다. 우리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교향곡 작품은 베토벤의 5번째 교향곡 ‘운명’ 교향곡이다. 사실 이 ‘운명’이라는 제목보다도 ‘베토벤 5번 교향곡’이라고 칭하는 것이 맞는 말이다. 하지만 베토벤이 이 곡을 작곡할 때 “운명이 문을 두드린다”라는 표현을 하여 제목이 이렇게 붙여진 듯하다.
  이 작품이 완성되기 전까지 베토벤은 자신에게 닥쳐온 시련과 끝없이 싸워야만 했다. 30대에 갑자기 찾아온 청력 상실로 작곡을 하는데 있어 어려움을 느꼈다. 귀가 점점 안 들리기 시작했고 상황은 좀체 낳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베토벤은 포기 하지 않고 작곡에 몰두 하고 전념했다.
  보통 사람의 경우에 이런 상황에 맞닥뜨리면 아예 자신의 일을 포기하거나 혹은 절망했을 것이다. 음악을 하는 사람에게 온전한 청력은 생명과도 같아 소중하고 가장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어야 할 인체 기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결국 베토벤은 불굴의 의지로 이 작품을 완성했다. 이런 베토벤의 피나는 고통이 내재돼서인지 이 음악은 후일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후 큰 찬사를 받게 된다.
  베토벤이 음악가로서 이와 같은 불행을 겪지 않았다면 이렇듯 불후의 명곡을 완성 시킬 수 있었을까? 누구든 이 질문에 대해 이렇게 대답할지 모른다. “베토벤의 실력과 음악적인 재능으로 봤을 땐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와 반대로 답하고 싶다. 그가 불행한 운명과 맞서 싸우며 끝내는 다시금 환희에 찬 순간을 맞이하는 듯한 느낌을 음악을 통해 표현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라고 말이다. 베토벤이 이러한 극한의 상황을 겪지 않았다면 곡에서도 그 내용을 실감나게 대중들에게 전달하지 못했을 것 아닌가. 우리는 누구나 성공을 꿈꾼다. 그리고 자신이 잘되는 모습을 눈앞에 그리며 그것이 상상으로만 그치지 않기를 염원한다. 이와 반대로 실패를 했을 때에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낙담하며 포기하기 일쑤다. 그러나 역발상으로 생각을 해본다면 꼭 성공하는 삶에서만 교훈을 얻는 것은 아니잖은가. 실패를 통해서도 분명 그것으로부터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항상 하고자 하는 일이 잘 풀리면 우리는 ‘성공’ 이라는 그 단어에만 집착을 하게 되고 그 이상의 것에 대해서는 깨닫지 못한다. 하지만 실패는 여러 가지의 의미와 깨달음을 우리에게 깊은 교훈으로 안겨 주기도 한다. 실패를 함으로써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을 갖게 해주고 그것의 원인이 되는 부족함을 발견하면 내 자신이 더욱 견고해 질 수 있는 발판이 될 수도 있다. 즉 비온 뒤에 땅이 더욱 굳는다는 이치와 같다고나 할까.
 
‘성공을 꿈꾼다.’ 이것은 보통의 사람들이 누구나 지향하는 일이다. 그래 성공을 원하는 것은 인지상정인 것이다. 그러나 어느 경우 실패를 꿈꾸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생각이다. 그만큼 실패는 마음의 끝없는 욕심을 먼저 버리고 나의 장점 보다는 부족한 점을 다시금 뒤돌아 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때론 성공 못지않게 실패도 꿈꾼다.
  이는 실패만이 인간을 겸허하게 만들어서이다. 삶에 쫓겨 잊고 있던 겸양까지 깨우쳐 주기도 하잖은가. 내가 ‘지닌 것’에 대한 자만이 아닌 내가 더 노력하여 내 안에 갖추어야할 부분들을 실패는 엄격한 스승으로 자리하여 알려주잖은가. 이러한 생각에 잠기노라니 갑자기 다시금 ‘운명’ 교향곡을 재생 해 듣고 싶은 욕심마저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