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는 ‘무가유향’인, 곧 ‘어느 곳에도 없는 장소’란 뜻으로 이상적이고 공상적인 사회로 완전하고 평화로운 상상의 세계로 이상향(理想鄕)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말의 시작은 영국의 정치가이며 인문주의 학자인 토마스 모어의 정치적 공상소설이다.
  1516년에 간행된 것으로 원본은 라틴어로 쓰여졌다고 한다. 저자인 모어는 한 선원(뱃사공)으로부터 이상(理想)의 나라 ‘유토피아’의 제도·풍속 등을 들은 것을 기록한 것이다. 이상사회를 묘사한 작품으로 유럽과 영국사회의 현상을 비판했다. 그 내용은 여러 가지이지만 르네상스 휴머니즘의 정신을 반영하고 있으며 종교적 관용·평화주의·남녀교육의 평등을 주장한 것이다.
 
본시 ‘유토피아’는 ‘아무데에도 없는 나라’라는 뜻으로 이 작품을 계기로 ‘이상향’이라는 의미가 주어졌다. 필자가 좀 쉽게 풀이한다면, 유토피아는 인간 정신의 고향이요, 마음의 안식처라 해석하고 싶은 것으로 이 세상에 ‘없는 장소’, ‘좋은 장소’라 결론 짓고 싶은 용어다.
  서양에 이어 동양에서도 그런 장소를 불리우는 명지가 있다. 세속과는 떨어진 깨끗한 곳인 선경(신선이 산다는 곳)으로 중국의 전설상의 유토피아(이상향)으로 도연명이 지은 ‘도화원기’의 기록된 이야기다.
  도연명은 중국 진나라 출신의 시인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詩)가 많고, 서경시(자연의 경치를 읊은 시)의 창시자로 귀농의 시, ‘귀거래사’로 유명한 문인이다. 그가 쓴 ‘도화원기’는 어떤 어부가 길을 잃고 헤매다가 도림(복숭아나무 숲)에 들어가서 진나라의 전쟁에서 난리를 피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세상의 변천도 모르고 그 후손들과 유복한 삶을 즐기고 있는 선경을 보았다는 가상(실재와 먼 현상)된 고사를 썼던 인물로 알리게 된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진나라 무릉(무릉도원)에 한 어부가 배를 타고 강물 따라가다가 복숭아 꽃이 만발한 미지의 장소에 닿았다. 그 곳에는 전란을 피해 숨어있던 사람들이 그 후 수백년의 세월을 조용히 행복하게 살았다. 이는 복숭아를 불로장생의 선과(신성한 과일)로 보는 관념과 현세와는 유리된 별천지가 존재할 것이라는 것을 믿어왔다. 그러한 소망이 결합되어 나타난 전설로 ‘무릉도원’을 이상향으로 보았다.
유토피아를 이상향으로 풀이한 것은 이상(理想)을 그리는, 완전하고 행복하며 평화로운 상상의 세계, 즉 도원경이라 불렀던 곳이다. 이 도원경이 바로 ‘무릉도원’이라 여겼다.
사람은 보이는 것으로 살아가지 않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경우도 생길 때가 있기 때문이다. 도덕과 행복의 길을 신속히 아는 방법 중 하나가 믿음이다. 신앙은 이성의 연장이며, 보이지 않은 것에 대한 사랑이고, 불가능이 있을 것 같지 않는 것에 신뢰이며, 신앙은 귀로 보는 것이라고도 한다. 신곡을 쓴 단테는, 신앙은 소망하는 것의 바탕,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 그것이 본질이라 한다. 그러나 사랑이 없는 신앙은 한 푼의 가치도 없다는 사실에 의아할 자가 있겠는가.
 
인간 생활의 욕심은 행복이다. 유토피아도 인간 행복의 추구다. 행복이 자기 안에 있다는 말에는 상당한 의심도 있을 것이다. 영어에 행복이라는 단어 ‘happiness’는 본시 옳은 일이 자신 속에서 일어난다는 뜻을 가진 ‘happen’에서 나온 말이다. 행복이란 글자가 가진 뜻과 같이, 그것은 그 사람의 올바른 성과인 것이며, 우연히 외부에서 찾아온 운명의 힘은 결코 아닌 것이다. 행복이 그리워 찾아 나선 곳이 아무것도 아닌 이름만 날리고 있다. 행복이 이미 지나가 버린 그림자이다. 우자만이 그것을 현재 있는 것으로 잘못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행복을 추구한 것도 중요하지만, 행복을 누릴 자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필자는 저녁에 성전에서 말씀 듣고 찬송하고 기도하는 시간이 마음이 안정됨으로 이곳이 바로 마음이 안식처가 되는 곳이고 도원이고 천국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행복을 멀리서 찾지만 슬기로운 사람은 자신의 발 밑에서 행복을 키운다고 한다. 행복은 애타심(남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에서 태어나고 불행은 자기본위(자기 자신을 기준으로 하여 생각하고 행동하는 일)에서 태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