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날 어머니는 가혹하리만치 자식 교육엔 엄격했다. 유난히 겁이 많은 필자였다. 필자를 어머니는 어린 사자로 여겼나보다. 가파른 절벽 아래로 밀어내기 예사였다. 지난날 온갖 역경을 꿋꿋이 이겨낼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엄한 가정교육으로부터 얻은 담력 때문이 아닌가 싶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잠시 시골 살 때 일이다. 어머닌 필자에게 석유 심부름을 시키곤 했다. 그것도 캄캄한 밤길을 1키로 미터나 걸어서이다. 다른 형제들을 제치고 유독 필자만 석유 심부름을 시킨 어머니였다. 필자 키만 한 석유 병을 잔뜩 끌어안고 마을 앞 공동묘지를 지나칠 때면 온몸이 얼어붙어 발길이 제대로 떨어지지 않았다.
  당시엔 이런 어머니가 야속해 ‘혹시 계모가 아닐까?’ 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요즘 부모들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칠흑 같은 어두운 밤길을 어린 여자 아이 혼자 걷게 할 부모는 어느 누구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 어머닌 평소엔 무척 자애로우면서도 교육만큼은 혹독했다. 학교만 파하고 오면 어머닌, “ 오늘 선생님께 몇 번 꾸중 들었느냐?”라고 묻곤 했다. 이 때 수업 시간에 친구랑 장난치다가 선생님께 들켜서 손바닥을 맞았다거나, 아님 준비물을 빠트려서 교단 앞에서 무릎 꿇고 벌을 섰다고 말하면 어머닌 금세 환하게 웃었다. 어린 마음에도 이런 어머니가 참으로 의아했다. 선생님께 손바닥 맞고 꾸중 듣는 것을 무척 좋아하잖은가. 다른 아이들 어머니는 선생님께 칭찬 받았다면 뛸 듯이 기뻐하지만 필자 어머닌 달랐다. 어머닌 선생님께 벌을 받고 꾸중을 들을수록 얼굴빛이 좋아졌잖은가. 이런 사려 깊은 어머니 마음을 어린 필자로선 그때는 미처 몰랐다.
  훗날 안 일이지만 어머닌 자식들이 학교서 그릇된 행동을 하면 선생님으로부터 엄한 꾸중과 따끔한 체벌 받기를 진심으로 원했던 것이다. 그릇된 행동을 하면 선생님께 정당한 꾸중을 들을수록 진정 반듯한 심성을 지닌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신념을 지닌 어머니였다. 요즘은 어떤가. 자식을 과잉보호 한 나머지 큰 소리로 아이를 야단만 쳐도 선생님에게 갑질을 하는 학부모까지 있잖은가. 장차 꿈나무로 자랄 어린이를 신체적 및 정신적으로 학대하는 일은 누구든 행해선 안 될 일이긴 하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자식 사랑만이 능사가 아니잖은가.
 
해서 될 일과 안 될 일을 구분할 줄 알고 사람답게 성장하도록 어린이들에게 그 길을 알려주는 것은 부모 못지않게 선생님 몫이기도 하잖은가. 영어 단어 술술 외우고 수학문제 척척 푼다고 완벽한 사람으로 성장하는 게 아니다. 인성 교육을 제대로 받고 자라야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될 것이다. 이 때 어린이들이나 청소년들이 올바르게 자라도록 깨우쳐주고 이끌어주는 분이 바로 선생님 아니던가.
 
얼마 전 교실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 서울 서이 초 20대 젊은 교사의 비극은 오늘날 추락한 교권 실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한 단면이기도 하여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 교사가 죽음에 이르기까진 무엇보다 학부모 갑질이 원인이라고 하니 더욱 지난날 어머니 가정교육을 뒤돌아보게 한다. 필자 어머닌 자식 교육을 위하여 오롯이 담임 선생님 가르침에 전적 의지 한 분이다.
 
어머니가 지닌 남다른 교육관 때문인지 그 당시 선생님이 필자 머리를 쓰다듬으며, “ 너는 일기 글을 참 잘 쓰는구나. 나중에 자라면 훌륭한 작가가 되겠다.” 라고 칭찬 하던 선생님 말씀을 가슴 깊이 담았기에 오늘날 글쟁이가 되기도 했나보다. 어디 이뿐이랴. 선생님이 쓰다듬어준 머리를 며칠씩 감지 않을만큼 그 손길을 감개무량해했다. 어린 마음에도 어머니께서 선생님을 신뢰하고 추앙하니 그 영향을 받아 스스로 선생님을 존경하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학창시절 사실 학문과 사람답게 사는 길을 가르쳐주신 선생님들이 계셨기에 이렇듯 오늘의 필자가 있게 된 것이다. 이런 선생님 은혜는 평생을 두고 갚아도 다 못 갚을진대. 어찌 얼마전엔 초등학교 6학년생이 반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감히 선생님을 구타했단 말인가. 어려서 어머닌 선생님은 부모님과 똑같은 분이라고 우리들에게 누누이 타이르곤 했건만, 도대체 이 아이 부모님은 자식에게 어떤 가정교육을 시켰을까?
요즘도 초등학교 2학년 시절 담임 선생님을 잊을 수 없다. 그 때 필자가 쓴 그림일기를 선생님께서 반 아이들에게 읽어주며 칭찬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나는 어떤 사람이 됐을까? 이런 생각에 잠기곤 한다. 선생님을 뵐 수 있다면 이제라도 어린 날 베풀어 준 극진한 제자 사랑에 만분의 일이라도 그 고마움을 꼭 갚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