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선은 모양을 이룬다. 그러나 내부는 비어있다. 나는 내 모양을 가지고 있지만 내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형체 있는 만물(萬物)이 원소들의 집합체라지만 원소들의 내부가 텅텅 비어 있으니, 물질은 곧 공(空)하다는 견해가 바로 반야심경(般若心經)의 '색즉시공(色卽是空)'인데, 놀랍게도 현대 물리학이 그 사실을 입증한다.
 
그처럼 공(空)한 물질이 어찌하여 질량(質量)을 가지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그 질량이 곧 에너지라는 이론이 가공할 원자폭탄을 탄생시켰다. 그러니까 빅뱅((Big-Bang))을 일으킬만한 거대한 에너지가 응축되어 형상을 이룬 것이 바로 이 몸인데, 이 몸 안이 다시 텅 빈 공간들뿐이라니, '색즉시공(色卽是空)'은 다시 '공즉시색(空卽是色)'으로 환원한다.
 
이와 같이 공사상(空思想)과 윤회사상(輪廻思想)이란 어떤 종교적 신념이 아니라 과학적 논거(論據)로 볼 수 있을 것인데, 미망(迷妄)의 터부나, 터부와 다름없는 종교에서는 오직 초월적 존재를 상정하여 모든 존재의 상(狀)을 규정하려 든다. 종교를 미망이라 하면 신성모독이라 하겠지만, 신성모독을 말하려면 먼저 '신성(神聖)'의 실체가 정의(定義)되어야 할 것인데, 신성은 공하기만 하여 따로 실체가 없으니, 대상(對象) 없는 행위가 있을까?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라는 말과 색불이공(色不異空)은 아주 다른 말이 아닐 것 같은데, 빅뱅이 일어나기 전 본래의 공간에는 무엇이 있었다는 얘긴가? 공불이색(空不異色)을 알면 색즉시공(色卽是空)이 따라 나오게 되니, 자연히 의문이 끊어지고, 의문이 끊어진 자리가 곧 열반(涅槃)일 터인데, 의식이 있는 한 생각을 멈추지 못하니, 생각이 고뇌를 만들고, 고뇌가 만상(萬狀)을 창조한다.
 
나는 아침마다 내가 살아 있음에 소스라쳐 잠을 깨는데, 그 순간이 바로 빅뱅이며 저녁에 잠드는 순간 우주는 사라진다. 물론 언젠가는 이러한 윤회의 고리에서 벗어나게 되겠지만, 나는 아직도 풀지 못한 의문들이 너무 많아 윤회를 거듭하게 되는 모양이다. 가장 작은 것이 양자(量子)이겠지만, 가장 큰 것을 모르는데 가장 작은 것을 알 수 있을까? 양자역학은 공(空)의 실체와 같아서, 존재하지도 않는 존재를 탐구함이니, 우리 삶 또한 허공 속에서 허상을 쫒고 있는 모양새가 아닌가?
 
존재함이 착시(錯視) 이듯이, 우리가 인식하는 모든 형상은 의식의 산물일 뿐이기에, 영사기의 불이 꺼지면 사라지는 영상처럼 내 의식이 사라지는 순간,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더 이상 존재할 공간이 없음을 알게 된다. '0'은 '무(無)'를 표현한 수학이지만, 우리가 '0'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수학이 성립될 수 없었던 것처럼, '공(空)'을 알지 못하고 '유(有)'를 논할 수 있을까?
 
상(狀)이 있는 한 집(執)을 버리기 어렵고, 집(執)이 있는 한 고(苦)를 벗어나기 어려우니, 근원인 상(狀)을 지우지 않고서야 이를 곳이 없다는 말이다. 강을 건너고 나면 나룻배를 두고 가야하듯이 지식을 통해 지혜를 얻었으면 그 지식에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 맛있는 음식으로 영양을 취하되 그 음식의 맛에 얽매이지 않아야 하며, 물질로 부(富)를 얻었지만 그 물질에 얽매이지 않아야 화(禍)를 부르지 않는다.
  ‘색불이공(色不異空) 공불이색(空不異色)’의 이치를 ‘색즉생(色卽生) 공즉사(空卽死)’로 치환하면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님을 알 것이니, 우리들의 삶 또한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라, 전도몽상(顚倒夢想) 구경열반(究竟涅槃)하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