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사 3개월만에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김기동)는 20일 H건설시행사 한모 대표로부터 거액의 불법정치자금을 수수한 한 전 총리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또 불법적인 방법으로 한 전 대표에게 현금 및 물품을 받은 한 전 총리의 최측근 김모씨도 같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한 전 총리는 2007년 3월 한 대표가 "대통령 후보 경선비용을 지원하겠다"는 제의를 승낙한 뒤 H사 직원 5명의 명의로 분산해 환전한 5만달러와 현금 1억5000만원, 1억원권 수표를 받는 등 3회에 걸쳐 미화 32만7500달러와 현금 4억8000만원, 1억원권 자기앞수표 1장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김씨는 2007년 2월부터 같은해 11월까지 고양시의 한 전 총리 지역구 사무실에서 H사 측으로부터 한 전 총리의 지역구 사무실 운영 및 대통령 후보 경선 비용 명목으로 9500만원을 수수하고, 버스와 승용차, 신용카드 등도 무상으로 제공받아 사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번 사건 수사를 지휘한 김주현 서울중앙지검 3차장 검사는 "수사 도중 지방선거가 있어 후보자 소환 등 대외적 수사를 자제하며 최대한 한 전 총리를 배려했다"며 "하지만 한 전 총리 측 인사들은 진술을 거부하는 등 형사법이 정한 절차를 악용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 전 총리는 일국의 국무총리를 지낸 공인의 자세를 버리고 언론을 통해 변명을 흘리고 진술거부권 뒤에 숨었다"며 "정당한 부패수사를 정치적으로 왜곡 이용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억울하다면 진술을 했어야 했음에도 기술적으로 무죄를 받으려는 전략이 아니었나 의문이 든다"며 "이번 수사가 깨끗한 정치풍토 만드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번 수사는 한 전 총리의 뇌물수수 혐의 1심 재판 선고를 하루 앞둔, 지난 4월8일 H건설시행사 등을 전격 압수수색하면서 공개됐다. H사 한 대표가 한 전 총리에게 거액의 정치자금을 건냈다는 신고가 접수됐기 때문이다.
선고 직전 수사 착수 소식에 검찰을 향한 비난이 이어졌지만, 검찰은 "별건수사가 아니라 신건수사"라며 "정식으로 접수된 사건을 수사하는 것은 검찰 본연의 임무"라고 항변했다.
이후 검찰은 H사 한 대표와 회사 관계자, 백종헌 프라임 그룹 회장 등을 소환하며 혐의 입증을 위한 구체적 정황과 진술 확보에 돌입했다.
또 한 전 총리의 최측근이자 불법 정치자금 전달 과정에 깊숙히 개입한 것으로 알려진 김모씨(여)를 출국금지 조치하고, 비록 기각됐지만 한 전 총리 계좌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도 청구하는 등 수사에 속도를 냈다.
하지만 수사가 본격화되는 시점에서 '6·2 지방선거' 변수가 등장했다. 한 전 총리가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검찰 수사가 자칫 불필요한 외압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이에 검찰은 지방선거 일정에 맞춰 외부적으로 드러나는 수사를 자제하고 물밑 수사를 통해 증거확보에 전력했다. 한 달여의 잠복기를 거친 수사는 선거에서 한 전 총리가 아쉽게 패하자 다시 동력을 얻었다.
한 전 총리 동생이 한 대표의 돈으로 추정되는 1억원을 개인 전세자금으로 사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한 전 총리의 지구당 관계자와 핵심 측근 김씨의 소환조사도 이뤄졌다.
다만 검찰은 한 전 총리가 2차례에 걸친 소환통보에 불응하자, 법원에 한 전 총리 동생에 대한 '공판 전 증인신문' 절차를 청구, 법정에 한 전 총리 동생을 세웠다. 물론 한 전 총리 동생은 검찰의 질문에 유의미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결국 검찰은 한 전 총리와 동생 등 핵심 인물에 대한 소환이 더이상 큰 의미가 없다고 판단, 3개월동안 진행된 수사자료를 정리해 이날 한 전 총리 등을 불구속 기소하면서 사건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