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의 일이다. 팔질(八耋)에 가까운 건장한 초로(初老)라 칭할 수 있는 외인(外人)이 찾아왔다. 전혀 면식이 없었기에 어떻게 찾아 왔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초등학교는 경주에서, 중⦁고등학교는 부산에서 졸업을 하고,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한 후 입대하여 학사장교로 복무하면서 육군대령으로 전역하였다고 한다. 주로 전방에서 여러 부대장을 역임하였고, 국방부대변인과 국방대학 교수 등 여러 보직을 맡아 수행하느라 재직 중에는 출생지인 고향 경주에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사이 외동이신 선고장은 사세하였고. 본인은 7남매 맏이였으나, 제씨와 매씨들이 미국으로 이민 가서 졸하였거나 대부분 향수하지 못하였으며, 매씨는 모두 좋은 가문으로 출가하여 미국 혹은 지방에 산거하고 있어서, 본인도 무척 외롭다는 것이다.
  선대는 경주에서 문중을 이루어 정답게 살았는데, 그 사이 각기 생업 따라 출향하다 보니 친척의 소재를 알 수 없게 되었으며, 단지 본관만 알뿐 세거지(世居地)와 조상의 묘소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본인이 보첩이라도 마련해야 자손들이 세계를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구보를 지참하여 물어물어 찾아 왔다는 것이다.
  구보를 안찰해 보니 선대의 묘소는 경주시 주위의 여러 산록에 산재해 있고, 아버지 대 까지는 경주 불국동에 거주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수하 자질들은 대부분 미국에 유학한 선량(選良)들로 국내외 우수 기업에 종사하고 있으나, 이 들은 보첩과 친척에 대해 관심도 없고 오로지 현직에만 매진한다는 것이다. 혈속만이라도 알 수 있도록 보첩 편찬에 참여하고 싶어서 그 방법에 대해 물어 주었다. 그러나 보첩은 대체로 30년 만에 증보판을 편찬하는 것인데, 문의자의 문중은 어디에 집성하고 언제 세보를 발행했는지를 알 수 없어서, 가승(家乘)을 정확하게 편찬하여 잘 간직하다가 문중에서 증보판 발행 연락이 있을 때 꼭 참여하라고 안내할 수밖에 없었다.
 
보첩은 한 가문의 정치사, 생활사와 혈통의 실증과 혈족의 여부, 소목(昭穆)의 서열 및 촌수를 분간할 수 있고, 존조(尊祖)와 경종(敬宗) 정신의 앙양, 그리고 혈족간의 화목단결을 강화하는 데 그 의의가 있는 책자이다. 보첩에는 가승, 파보, 세보, 족보, 대동보, 계보, 가보와 가첩 등이 있다 가승(家乘)은 한 가문의 사기(史記)이다. 자기를 중심으로 하여 직계존비속에 대하여 그 세계를 사적(事蹟)을 갖추어 체계적으로 기록한 책자이다. 파보(派譜)는 어느 한 파에 대한 보첩이며, 시조로부터 파속(派屬) 전체를 모아 기록한 보첩이다. 세보(世譜)는 한 특정지역에 거주하는 일파(一派) 또는 각 파속들이 한데 어울려 합동으로 편찬한 것을 세보라고 하며 일명 세지(世誌)라고도 한다. 족보(族譜)는 관향(貫鄕)을 단위로 하여 같은 씨족 전체를 수록한 보첩이다. 이것은 한 가문의 역사를 표시하고 가계의 연속을 실증하는 문헌이며, 일반적으로 모든 보첩의 대명사로 일컬어지고 있다.
  대동보(大同堡)는 같은 비조(鼻祖)이후 득관(得貫)하여 분적(分籍)된 시관조(始貫祖)마다 각기 다른 관향을 가지고 있는 혈족 간에 동보(同譜)로써 종합하여 편집한 보첩을 말한다. 그리고 계보(系譜)는 한 가문의 혈통관계를 표시하기 위하여 명(名), 휘자(諱字)만을 계통적으로 표시한 도표이며, 가보와 가첩은 각자 집안에 소장되어 있는 보첩을 말하며 이것을 통해 가계(家系)를 알 수 있다.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가정이라는 단위 조직에서 생장하여 조상의 유업을 이어 받고 후대에 전승하면서 패밀리 소사이어티를 형성하여 생활해 오고 있다. 이 패밀리가 수많은 세월과 더불어 방대한 씨족 네트워크를 이룩한 것이 패밀리 라인(family line) 즉 가계 혹은 세계이다.
  가계는 혈연적 유대의 범위를 결정하는 사회의 출계원리에 따라 인지되거나 제도화되어 내려오는 한 집안의 계통체계를 가리키는 말이며, 선대의 입장에서는 대(代)를 물린 결과이며, 후손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선대를 인지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세계가 거듭될수록 당내(堂內), 문중과 같은 가족 단위 이상의 조직체 또는 비조직적인 범주로 그 네트워크의 인지 범위가 확산된다.
 
이 네트워크를 통해 사람들이 권력을 획득하고 집단이나 조직이 움직이는 이유 등의 문제를 설명할 수 있으며, 개인적 경험이나 행동, 성과 등이 어떤 네트워크의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또한 네트워크는 구속력을 갖고서 선택에 제한을 가하고, 여러 가지 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자원을 공급한다. 따라서 사람의 차이는 네트워크가 다르거나 같은 네트워크에서의 차이 나는 위치 때문이라고 한다.
  가승에 대해 이해를 한 그 외인의 위선사를 돋보기 닦아가며 수개월동안 비교적 자상하게 정서해서 출판해 주었더니 만족감을 표현하는 모습에 피곤함을 잊을 수 있었음은 가승의 가치와 중요성을 알아주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