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불지 않았다. 햇살 꼿꼿했다.대나무 우듬지 빈 방을 기웃대지 않았다.등 굽은 기억들 손톱만큼도 간여하지 않았다.심심한 시간이 제 민낯을 제 멋대로 들어냈을 것이었다. -강현국의 디카 시집, '내가 만난 사막 여우'서     강현국 시인은 최근 주목할 만한 디카 시집, '내가 만난 사막여우'를 출간했다. 감동적이고 참신한 시집이다. 시인의 화두는 지금 '디카 시' 쪽에 깊히 꽂혀 있는 듯, 얼마 전에는 '꽃피는 그리움'이라는 아름다운 디카 시집도 상재 했다.   문자 언어와 영상 언어가 연인처럼 내밀한 대화를 주고받는 디카 시!의 매력. 언제부터 낯설은 '디카 시'가 시인의 화두가 됐을까? 자못 궁금하다.   김남호 평론가의 지적처럼, 강현국의 디카 시는 단연코 전위다. '전위는 기교가 아니라 정신이다'. 그렇다. 강현국의 디카 시는, 치열한 시 정신이 만들어 낸 괄목할 만한 새로운 시의 세계다. 사진 없이도, 영상 언어가 없어도, 시인의 짧은 산문만으로도, 한편의 아름다운 시가 되는, 시와 산문의 그 경계에, '강현국의 디카 시'는 존재한다.   그간, 독자들에게 만만한 장르라고만 생각해 왔던 디카 시에 대한 생각을 '내가 만난 사막 여우' 시집은 새로운 긴장과 질문을 던진다. 시, '낙서'의 '디카 시'도 그렇다. (사진이 생략되어 독자들에겐 아쉽고 송구한 마음이다.) '낙서' 작품의 영상은, 시인의 서재 겸 침실인 듯한 빈 방의 풍경이다. 책들이 낙서처럼 흩어져 있다.    투명한 오후의 햇살이 비치고, 심심한듯한 빈 방, 대형 유리창밖엔 나무들이 보인다. 평화롭고 한가한 개인 날 오후다. 시인이 낙서 같은 시를 쓰고 싶은 오후다. "바람 불지 않았다. 햇살 꼿꼿했다. 대나무 우듬지 빈방을 기웃대지 않았다. 등굽은 기억들 손톱만큼도 간여하지 않았다. 심심한 시간이 제 민낯을 제 멋대로 들어냈을 것이었다."   '심심한 시간'과 '꼿꼿한 햇살'이 주인공 같은, 얼핏 낙서 같은, 그러나 결코 낙서는 아닌 진정한 시다. 제 민낯을 제 멋대로 들어내고 싶은 시간. 낙서 같은 시간이 인생의 아름다운 시간이 아닐까? 하고 시는 질문하고 있다.  '디카 시'의 문학성은 어디 있을까? 그 독자적 미학의 근거는? 본격문학의 한 갈래로 문학사에 과연 정착할 수 있을까? 시인과 함께 고민해 보고 싶은 햇살 좋은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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