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두고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지만 신(神)이 아니기에 완전함보다는 불완전한 점이 많은 존재이다. ‘완전하다’는 말은 필요한 것이 모두 갖추어져 있는 것으로 부족함이나 흠이 없음을 뜻한다. 간혹 숫자에는 분수나 소수가 아닌 정수를 가리키는 완전수가 있고, 완전식품이란 용어도 있다. 우유와 같이 인체에 필요한 영양으로 모두 갖춘 것으로 완전식품은 있다. 그리고 국가에 있어서 주권국에 대하여 외국의 간섭이나 제한없이 주권을 완전히 행사하는 완전주권국은 있다고 한다.원래 신의 본성이 완전무결인데, 그것을 바라는 것이 인간의 본질로 완전하여 아무런 결점이 없음을 말한다. 이러한 인간의 욕심이 성취되지 않으면 원망과 불평이 생기기 마련이다. 원망은 남이 내게 한 일에 대하여 억울하게 여겨 탓하거나 분하게 여겨 미워함이고, 지난 일을 언짢게 여겨 짜증스럽게 부르짖음을 뜻한다. 그리고 만족스럽지 못해 생기는 불평은, 마음에 들지 않아 못마땅하게 여기고, 그것을 말이나 행동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또한 긍정적인 마음에서 탈피한 거역자를 불평분자라 하고, 그 사람의 태도(심성)는 언제나 불평만만하다. 이 세상에 완전한 사람이 없는 것처럼 자기의 존재를 정당하게 향락하는 법을 아는 것이야 말로 절대적인 완전이다. 현실에서도 완전한 남자도 여자도 없다. 다만 있는 것은 오직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 뿐이다. 인간은 스스로 즐길 줄 모르는 사람들은 때때로 남을 원망한다. 필자는 외람스럽게도 ‘만족’이란 말을 아끼면서 간직하는 말이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만족이란 말씀에 푹 빠졌다. 만족은 마음에 부족함이 없이 흐뭇함이고 마음이나마 풍족하다는 생각으로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불평하고 불만스럽게 살아온 과거는 모두가 짜증뿐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합리주의 철학자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언을 남긴, 데카르트는 인간의 애정과 원망은 생리적으로 강하고, 미움과 불평은 생리적으로 약하다. 당신의 건강을 위해서 남을 오래 원망하는 감정에 머물지 말아야 한다. 불평 속에 원망이 자라고 미움에서 질투가 생긴다. 법 구경에 원망으로써 원망을 갚으면 마침내 원망은 멈추지 않는다. 오직 참음(인내)으로써 원망은 쉰다. 이 법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중국 전국시대의 유학자인 순자도 스스로를 아는 자는 남을 원망하지 않는다. 원망의 주체는 자기 자신이지 남 탓이 아니라는 것이다. 천주교 교리에도 고해성사에, 모든 것- 일이 그릇된 원인, 잘못된 까닭을 남을 원망하지 않고 핑계나 구실로 삼지 않고, 오직 ‘자기의 탓’으로 여기는 회개의 기도가 천주님의 천성임을 가르친다. 명나라 말기에 유교 사상의 줄기인 ‘채근담’에, 내가 남에게 공로가 있거든 그것에 보수(보답)있기를 바라지 말고 허물이 있거든 그것을 갚도록 생각하라. 누가 나에게 은혜를 베풀거든 그것을 잊지 말고, 원망이 있거든 그것을 잊어버려라. 항상 자기를 다스림에 있어 엄격하고 남을 대함에는 관대해야 한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고 원망스런 일이 생기면 나보다 못한 사람을 생각하라. 원망하고 탓하는 마음이 절로 사라진다. 마음이 게을러지고, 불평이 생기거든 나보다 나은 사람을 생각하라. 정신이 절로 분발할 것이라 했다. 사람은 불행한 경지를 조우(우연히 만남)하게 되는 때, 하늘을 원망하고, 빈자(가난)는 부자를, 천한 자는 귀인을, 약자는 강자를 원망한다. 이러다 자신이 절망에 빠지면 멸망하게 되고 희망을 잃고 포기하면 만사는 구제불능이고, 불능은 할 수 없는 불가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