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경(詩經)』에 ‘민지다벽(民之多僻)이니 무자립벽(無自立辟)이로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 말은 일반 국민이 일단 치우치고 사악한 길로 나아갈 때는 그들을 돌이키는 방법이 없음을 뜻하는 말이다.   일반국민은 위정자나 공무를 수행하지 않는 선량한 평민이다. 이들이 치우치고 사악하게 된다면 아마도 세상은 정상을 회복할 수 없는 극히 혼란한 세태가 된다는 것을 경고하는 의미를 내포한 것 같다.   사마천은 “조정에서 관리로 있으면서 군주에게 의견을 내놓지 않는다면, 이런 관리는 필요 없다.”면서 관리의 역할에 대해 언급하였다.   반고는 “시대와 세속을 따르면 윤리와 도덕에 배치(背馳)되고 사상과 신념에 배치된다. 반대로 세속을 초월하고 시류에 역류한다면 인생은 한 걸음도 내디디기가 어렵고 위기가 도처에서 일어나게 되니, 적어도 이 생애에는 밥도 먹을 수 없어서 스스로 굶겨 죽일 수 도 있다”면서 올바로 처세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다.   『후한서』의 작가 범화는 “하루 종일 오로지 도덕과 의리의 학문만을 말한다면, 밥마저 먹을 시간이 없을 것이며 생계를 유지할 방법마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생존을 추구하느라고 돈을 벌고 관리가 되기 위해 목숨마저 아끼지 않는다면 윤리 도덕의 실행은 막혀버린다. 삶과 의에 충돌이 일어날 때 옛사람들은 죽음이 삶보다 가치가 있다면 삶을 버리고 의를 택하였으며, 생존이 국면을 전환할 수 있거나 보다 큰일을 할 수 있다면 비록 그럭저럭 삶을 살아도 죽음보다 가치가 있기 때문에 의를 버리고 삶을 추구하였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죽음으로 절개를 지킬 수밖에 없었다.”고 하였다.   세속의 풍조가 날로 나빠지는 것을 보고 어지럽고 사악한 세상을 멀리 벗어나려고 바라면서 스스로 고고하다고 생각하면, 인간 세상에는 서로 동정하고 불쌍히 여기는 인정마저 죄다 없어질 것이다. “천하의 흥망에는 필부(匹夫)도 책임이 있다.”하였으니 위정자만의 천하가 아니기에 국가의 흥망에 대한 책임은 일반 국민에게도 있다는 정신을 견지하여야 할 것이다.   오늘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이스라엘과 하마스 사이에 가공할 전쟁이 발발하여 무고한 백성이 날벼락을 맞아 죽어가고 도시가 궤멸(潰滅)되고 있다.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각종 무기를 개발하여 성능시험이라도 하는 듯 폭격을 하고 있으니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TV화면에 비친 사상자와 무너진 고층 빌딩의 처참한 모습이며 절대 부족한 구호품에 매달리는 생명의 안타까운 장면을 보니 너무나 애처롭다.   인류역사는 투쟁의 역사라고 당연시해서는 아니 되겠으며, 만물 가운데 최귀한 것이 인간임을 한시라고 잊어서는 온당한 삶의 마당이 될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춘추전국시대에 한 사람의 영웅이 잘못된 정욕 때문에 전장에서 수많은 생령이 허무하게 죽어간 역사가 어찌 일장 공명의 깃발이 되어서야 하겠는가.   국제 사회에서 자주 발생하는 전쟁이며, 정치의 제 현상이 상식에 벗어나서 국민들이 통한(痛恨)하게 되면 마치 여름철 폭우로 인해 산자락이 무너져 내리는 위험한 사태(沙汰)와 같이 불행을 당하기 쉽다. 그래서 그와 같은 극단적 불행이 다가오는 세태가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함은 국민 모두의 우국충정에서 솟아나야 할 것이다. 국민이 일단 치우쳐서 사악한 길로 나아갈 때는 그들을 돌이키는 방법이 없다는 “민지다벽(民之多僻)이니 무자립벽(無自立辟)이라”고 『시경』은 가르치고 있으니 그것을 현 세태(世態)의 교훈으로 삼아 재음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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