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비와의 로맨스로 우리에게 기억되는 당나라의 제6대 황제 현종은 당나라 최고의 전성기 개원성세(開元盛世)를 이끌었던 인물이다. 물론 양귀비와 사랑에 빠지기 전까지였다. 현종이 명군으로 칭송을 받던 시절 한휴(韓休)라는 재상이 있었다. 현종에게 끊임없이 쓴소리를 하는 인물이었다. 미스터 쓴소리 한휴에게 너무 시달린 나머지 현종은 수척해지기에 이르렀다. 신하들은 현종에게 한휴를 파직시키라고 권유했다.    그때 현종이 신하들에게 한 말이 있다. “나는 비록 수척해졌지만 한휴의 의견을 받아들여 정책에 반영했으니 천하의 백성은 살찌게 된 것이다. 임금 노릇을 잘하는 게 뭐냐. 그게 천하의 백성을 살찌게 하는 것이다.” 현종의 그 말에서 비롯된 고사성어가 바로 군수천하비(君瘦天下肥)다. 임금이 수척하면 천하가 살찐다는 뜻이다. 그 정도로 현종은 충신의 쓴소리를 모두 수용하려고 노력했던 명군이었다.   지난달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 후보자가 참패한 후 용산 대통령실에서는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인다고 했다. 그리고 대통령은 대통령실 관계자들에게 책상에만 앉아있지 말고 민생의 현장으로 나가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은 이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국민의 뜻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8월 28일 국민의힘 연찬회에서 대통령이 “제일 중요한 게 이념”이라고 말했던 것과 너무 다른 발언이어서 국민은 의아했다.    그러고 나서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2주 사이에 연거푸 두 번이나 만났고 관변단체 세곳의 행사에 참가했으며 오는 15일부터는 3박 4일 일정으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한다. 또 18일 귀국한 뒤 20일부터 3박 4일간 찰스 3세 국왕 초청으로 영국을 국빈 방문할 예정이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이같은 대통령의 일정을 두고 “대구-관변단체-해외 일정을 뺑뺑이 하는 것”이라며 “심각한 문제”라고 했다.   대통령 주변에는 쓴소리하는 사람이 없는 것일까?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국회의원들은 다시 공천을 받기 위해, 대통령의 측근은 누군가가 공천에서 탈락하면 그 자리를 꿰차고 출마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는 분위기다. 여기에 대통령은 내년 총선에서 여당이 패한다면 곧바로 레임덕에 빠진다는 위기감 때문에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선거에서 이기는 방법을 찾기 위해 모든 행보를 총선 전략에 맞추는 분위기다.   그렇다면 국민이 겪는 고통은 도대체 누가 책임질 것인가. 경제적 위기는 과거 IMF 때보다 몇 배 더 강하게 올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겁을 주고 있다. 금리는 슬금슬금 올라 영끌족들은 언제 터져버릴지 모르는 가계부채에 대해 속수무책이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국가 안보도 장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북한이 언제 도발해올지 모르는 상황에 대통령은 압도적 힘으로 인한 제압을 강조하고 있으니 불안하기만 하다.   국민은 자신의 자리에서 한 걸음도 비껴나지 않은 채 최선을 다하고 있다. 위기의 순간에는 그저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제 할 몫을 다하는 길밖에 없는 것이다. 소상공인들은 엔데믹 이후에는 사정이 나아질 것이라고 막연하게 기대했지만 팬데믹 때 끌어 쓴 돈을 갚아야 할 시기가 코앞에 다가왔음에도 경기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국밥 한 그릇에 어김없이 1만원 한 장을 내놔야 하는 고물가는 서민들의 숨을 막히게 한다. 어쩌란 말인가. 국민이 이처럼 힘들어하는데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미래를 어찌 감당하란 말인가. 대통령에게 이 사정을 가감없이 곧바로 전할 사람은 과연 없는 것일까. 전하고 싶어도 대통령이 불같이 화를 낼까 두려워서 아예 입을 닫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이 모든 책임이 대통령 한 사람에게만 있다는 것인가. 국무회의에서,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박살 날’ 각오를 하고 쓴소리를 낼 용기를 가진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면 대통령은 박복한 사람이다. 현종에게 한휴가 없었다면 개원성세는 없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만약 미스터 쓴소리 한휴가 없었다면 현종의 일생은 오로지 양귀비와의 로맨스만 남았을 것이다. 군수천하비. 대통령실 집무실의 벽에 대문짝만하게 써붙여 놔야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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