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이머'가 '나의 불행은 대부분 타인과의 관계에서 비롯된다.'라고 했다. 그러니까 타인과의 관계가 싫어 폐쇄적 삶을 선택한 사람도 있겠지만, 그 고독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어느 경우가 되었든 간에 사람이 홀로 존재할 수가 있을까? 때문에 싫든 좋든 필연적으로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 존재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지금 우리 사회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타인과의 관계에 알 수 없는 공포심과 이유 없는 증오심을 키우며 나 홀로 삶, 각자도생에 익숙해져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집단지성과 집약된 협업체제의 노동력으로 일구어낸 인류문명사회가 과연 각자도생으로 존속 가능할는지는 모르지만, 사람이 하루의 일과 중에 어느 것 하나 타인의 도움 없이 살아갈 도리가 있을까? 그러니까, 생존에 필수 요소라고 하는 의식주(衣食住) 중에 당신이 스스로 해결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모르지만, 지금 당신이 먹고 있는 그 다양한 먹거리들은 누가 생산한 것이며, 치부를 가리고 추위를 막아주는 그 옷은 누구의 노동으로 만들어 졌으며, 당신이 타고 다니는 그 자동차는 누가 만든 것이고 또 당신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그 집은 어떤 사람들의 노력으로 지어진 것인가?
연중 온화하기만 한 날씨에 젖과 꿀이 흐르는 에덴동산에 머물며, 밀림속의 고독한 영장류 오랑우탄처럼 살아갈 수 있다면 또 모르겠지만, 사람은 사회라는 공동체 속에서 타인과의 협력 없이는 단 하루도 삶을 이어가기 어려운 숙명을 타고난 생명체라는 각성이 필요하지 않을까? 때문에 나는 쇼펜하이머의 말에 동의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모든 행복은 오직 타인과의 관계에서 비롯된다.'라 고쳐 쓰고 싶어지는 것이다.
 
대단히 오래 전의 기억이긴 하지만 ‘뉴기니아’의 밀림 속 오지에 부락을 이룬 채, 문명과는 거의 동떨어진 원시적 수렵생활만을 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 그들은 전혀 생계에 불안 같은 것도 모를 뿐만 아니라 이웃과의 위화감이나 경쟁의식 같은 것은 아예 찾아볼 수조차 없고, 누구의 화살에 잡힌 사냥감이든 간에 분배에 다툼이 없는 것을 보고, 나는 우리가 그토록 추구하는 부(富)와 문명이 과연 인간의 행복 조건인가를 깊이 생각한 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나는 일찍부터, 잠시나마 문명생활을 피해보고자 오지(奧地) 캠핑을 즐겨했지만, 요즘은 캠핑장에서조차 사람들이 빈부경쟁을 벌이며 럭셔리한 캠핑, 편리함만을 쫒는 것을 보고 차라리 무인도를 동경하게 된다. 힘든 노동 없이 달콤한 휴식이 없고, 시장함만큼 좋은 미각도 없으련만, 사람들은 모두 힘든 노동은 기피하고 화려한 미각만을 쫒으면서 처절한 빈부 경쟁을 지속하는 가운데 모든 이들을 적대시하며 불신을 키우더니, 드디어는 공동체의 기본 단위인 가정마저 기피하고 각자도생의 나 홀로 삶을 선택하려는 모양이다. 실제 우리사회의 기득권 수 보다는 스스로 자신이 기득권이라 착각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의 수가 훨씬 더 많아 보이기는 하지만, 기득권이든 비기득권이든 타인과의 관계를 떠나 나 홀로 자신의 안위와 행복이 존속 가능할는지?
침몰하는 호화여객선의 스카이라운지에서 지금 만찬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은 불과 몇 시간 후 자신들의 운명을 알지 못하는 듯하지만, 과연 배가 침몰한 후에도 죽음의 우선순위가 있을는지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