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적부터 세상은 둥글다고 전해왔다. ‘둥글다’는 말은 모(뾰족한 끝)가 없고 원만한 것으로 시작도 끝도 없는 그 모양이 원(圓-동그라미)이다. 그리고 모든 인류는 원의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다. 지구가 둥글며, 해와 달도 둥근 모양을 하고 있어 둥근 세상이라 한다.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인간은 동일하고 평등하다. 간혹 선(善)하고 악(惡)한 사람으로 구별되고, 차별되고 있지만 모든 인간의 인격과 가치는 동등하다. 그러나 착한 사람을 두고 선인(善人)이라 하고, 나쁜(악한) 사람을 악인(惡人)이라 구별하기도 한다. 기독교 성경 ‘누가복음서’에 ‘선(善)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여기에 나오는 선인의 얘기가 전 세계 문학지에 각자의 나랏말로 번역되어 세상에 아주 많이 알려진 성경 말씀의 한 예화이다. 필자는 영어 원문으로 된 말씀을 대학에서 강의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사실은 필자가 평양에 갔을 때 북한 최초의 ‘봉수대 교회’에서도 이 말씀을 들은 적이 있었다.뿐만 아니라 세계인들이 찾아보는 영어사전에도, 굿·사마리텐 (Good samaritan-선한 사마리아 사람)으로 등재 되어있다. 그 말의 풀이로, ‘곤경에 빠진 사람의 진정한 친구’로 해설된 용어이기도 하다. 제목 ‘선한 사마리아 사람’ 원문 출처-누가복음 10장 30절-37절.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 (이스라엘공화국 수도)에서 여리고(요르단의 옛 수도)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다. 강도들이 그 사람의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가 버렸다. 마침 한 제사장 예루살렘 신전의 제사(祭司)의 장(長)이 그를 보고 그냥 지나가 버렸다. 이와 같이 레위인 (유태교에서 예루살렘 신전의 제사장 밑에서 일하든 하급 종교가들의 족속)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가버렸다. 그러자 마침 어떤 사마리아 사람(팔레스티나의 사마리아 부근에 살던 민족)이 여행 중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갔다. 거기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을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신약 시대의 은화) 둘을 주었다. 이 사람을 잘 돌보아 주라고 당부하면서 이 돈 이외의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 전부 갚아 드릴 것을 약속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들은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고 물었다. 그 대답은 선한 일을 하여 자비를 베푼 자라 하였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도 가서 이와 같이 하라고 당부했다. ‘잠언서’에 착한 사람은 칭송을 받으며 기억되지만 나쁜 사람은 더러운 이름을 남긴다. 착한 사람은 생명 나무 열매를 맺지만 남 괴롭히는 사람은 생명을 잃는다. 착한 사람의 등불은 빛을 내지만 나쁜 사람의 등불은 꺼진다 했다. 그리고 악한 사람 제 악행으로 망하지만 착한 사람은 그 정직으로 피난처를 얻는다 했다.사람 가운데 가장 완전한 사람은 모든 이웃을 사랑하며 착한 사람, 악한 사람 막론하고 모든 사람에게 선을 베푸는 사람이라 한다. ‘논어’의 선진편에 자장(子張)이 선인의 도를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성인(聖人)의 발자취를 따라 밟지 않으면 깊은 실(實-출세의 길)까지 들어가지 못한다 했다. 착한 사람은 언제나 자기 자신에게 감사하며 산다. 악인은 음식을 먹기 위하여 생활한다. 그러나 선인은 생활하기 위하여 음식을 먹는다 한다. 바보는 지혜에 관하여 말하는 것을 악인은 도덕에 관하여 말하는 것을 가장 즐긴다. 악인은 자기 자신을 잘 알며 자신의 무거운 짐을 스스로 진다는 것이다. 사람이 참으로 악해지면 남에게 상처를 주고 기뻐하는 일 이외에는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착한 사람의 마음에 항상 즐거움이 차 있는 것은 끊임없는 향연(융숭하게 대접하는 잔치)과 같은 것이라 한다. 타인의 신상에 일어나는 불행을 결코 흠잡지 않는 세상에 더문 사람만이 착한 선인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