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상생’ 화두를 던진 이후 대기업집단이 내놓은 상생방안의 윤곽이 대부분 드러난 가운데 이에 대한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시각차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실상 사안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재계 회장단이 9일 회의를 열 예정이어서 주목되고 있다. 13일에는 이명박 대통령과 재계 총수들이 이 문제를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 대·중소기업간 상생과 관련해 정부가 지속적으로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5일 주요 경제단체, 산업계, 학계 등에 따르면 삼성, 현대차, LG, SK, 포스코 등 대기업집단들이 대대적으로 상생방안을 내놓고 있지만, 정작 중소기업들은 중요한 알맹이는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대기업-중소기업 ‘시각차’ 여전 발광다이오드(LED) 관련 중소기업의 한 관계자는 “눈에 들어오는 상생방안은 거의 없었다. 누구도 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며 “핵심은 납품단가를 정하는 구조에 관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대기업 1차 협력업체의 한 임원은 “업종별로 분명 차이가 있을 것”이라면서도 “대기업이 정해진 기간 안에 성과를 내려면 하도급업체의 납품단가를 인하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가장 최근인 지난 달 27일 SK가 내놓은 상생방안을 뜯어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채용인원 확대 ▲사회적 일자리 확충 ▲협력사 경쟁력 강화 ▲제2미소금융 저변 확대 등은 그간 지속적으로 거론된 두루뭉술한 방안이라는 것이 중소기업계의 일관된 반응이다. 실질적인 ‘거래’에 대한 내용은 빠진 반쪽짜리라는 것. 다른 대기업집단들이 내놓은 방안에도 납품단가와 관련된 문제는 다루고 있지 않다. 삼성, 현대차, 포스코 등이 제시한 주요 방안 가운데 하나였던 ‘사급제’에 대해서도 중소기업계는 “그나마 나은 방안”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사급제란 대기업이 주요 원자재를 직접 구매해 협력업체에 제공하는 것이다. 중소기업중앙회 기업협력팀 관계자는 “사급제는 중소기업을 단순한 임가공업체로 전락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태양광 관련 한 벤처기업 대표는 “대기업 위주의 상생은 전례의 반복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같은 중소기업들의 반응에 대해 대기업들도 고충을 토로하고 있다. 모두가 만족하는 방안을 내놓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굴지의 대기업 한 임원은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단순한 이분법적인 구조가 아니다. 중소기업들 사이에도 상생의 문제는 마찬가지의 화두다”라며 “대기업이 1, 2, 3차에 이르는 중소기업들을 모두 도와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점은 안타깝다”고 말했다. 일례로 삼성전자의 경우 국내 협력업체만 해도 2차까지 총 1만여개 업체에 달한다. 3차 협력업체는 추산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다. 이현석 대한상공회의소 전무는 “중소기업들 사이의 하도급 비중이 65% 정도다. 이들의 문제가 더 심각하다”며 “납품단가를 보장해주는 것 역시 중소기업을 ‘온실 속의 화초’로 키우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정부가 주도해야” 중소기업계는 상생과 관련해 정부의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 중기중앙회 기업협력팀 관계자는 “대기업들이 내놓는 방안은 사회적인 약속일뿐이며 이를 이행하지 못한다고 해서 제재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며 “내놓은 상생방안이라도 잘 지켜질 수 있도록 정부가 모니터링을 강화하면서 잘하는 기업에게는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대한상의에서 열린 ‘상생협력관계 발전방안’ 토론회에 참석한 이종욱 서울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진일보한 상생문화를 위해서는 대통령이 주도해 국정 최우선 과제로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업계 한 관계자는 “적정 이윤을 보장해 달라는 중소기업의 요구를 마냥 들어주기는 힘든 일이지만 그렇다고 이를 시장의 기능에만 의지하는 것도 문제”라며 “결국 정부의 구체적인 방안이 필요한 영역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중소기업계는 이 문제를 대기업집단 총수의 판단이 필요한 영역으로 보고 있다. 전문경영인 CEO 수준에서는 과단성 있는 결단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이런 가운데 전국경제인연합회는 9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정기 회장단회의를 열 예정이라고 밝혀 주목되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는 상생에 대한 논의가 있을 것으로 보여 재계 총수들의 결과물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13일에는 이명박 대통령과 10대그룹 총수들이 한 자리에 모여 상생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9일 전경련 회장단회의는 이에 대한 예비회의 성격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상생과 관련해 “윗사람, 아랫사람이 힘을 합쳐야 한다”며 “똑같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태원 SK 회장은 최근 회의에서 “중소기업과 서민이 자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대기업의 역할”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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