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삼척시 마로면 활기리 산 149번지에는 국가지정 문화제 사적 524호로 지정된 조선 태조 이성계의 5대 조부 이양무(준경) 장군의 묘소가 있고 그 위쪽으로는 약 4km 떨어져 그의 부인 영경의 묘가 있다. 삼척에서 태백으로 가는 38번 국도를 따라가면 활기리란 마을이 있고 여기서 오른쪽으로 진입하여 1.5km쯤 가면 준경 묘 입구라는 안내판이 있는데 도보로 약 30분(1.8km)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조선왕조 태동의 발상지로 대한제국 고종이 광무 3년(1899) 4월16일에 묘소를 수축하여 공식적인 선조의 묘로 추봉(追封)하고 묘와 제각과 비각을 건축했다. 이양무는 태조 이성계의 5대조이며 목조(추존) 이안사의 아버지이다. 원래 이들은 전북 전주에서 살았으나 멀리 강원도 삼척에 묘소가 정해진 사연이 있어 잠시 소개를 한다. 
 
태조 이성계의 4대조 이안사는 원래 전주 관아의 관직이었는데 전주부사가 총애하는 관기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이를 알아차린 전주 부사가 노발대발하며 역적으로 몰아 그 가족까지 모두 죽이려 하자 이안사는 늙은 노부와 식솔을 데리고 멀리 강원도 삼척으로 피신을 하게 된다. 세월이 지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목조 이안사는 아버지의 묘소 자리를 찾아다니다가 잠시 나무 밑에서 쉬는데 한 도승이 동자승에게 하는 얘기를 우연히 엿 듣게 된다. “이곳에 장사를 지내면 5대 안에 한 나라를 개국하는 그런 큰 인물이 태어날 것이다. 
 
발복이 따르려면 이상하게도 반드시 개토제(開土祭) 때 소 일백(100) 마리를 제물로 바쳐야 하고 금으로 만든 관(棺)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안사는 마침 묘 터를 구하던 중이라 그 얘기가 귀에 번쩍 들렸고 집에 돌아온 그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남의 집 머슴살이로 워낙 살림이 가난하다 보니 소 일백 마리와 금관은 생각조차도 할 수 없는 처지이다 보니 한 가지 방법을 고안해 냈다. 소 백(百) 마리는 흰(白)소 1마리로 대신하여 백(百)을 만들고 금관은 보리 짚이 황금빛이 나므로 이것으로 관을 싸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낸다. 마침 처가에 흰 소가 한 마리 있어 백우(百牛)를 백우(白牛)로 대체하기 위해 부탁을 한다. 흰 소 1마리를 잡아 제사 지내고 아버지 관(棺)을 보리 짚(일설에는 귀리 짚)으로 잘 싼 다음 도승이 점지한 그 자리에다가 장사를 지냈다는 것이다.
  그리고 몇 년 후 그는 함경도 덕원으로 이사를 갔으며 그곳에서 이양무의 5대손 이성계가 태어나고 훗날 왕위에 올라 조선을 건국하니 묘를 쓴지 약 150년 만의 일이다. 태조 이성계는 즉위하자마자 삼척에 있는 조상 묘를 찾도록 하였으나 찾지 못하고 선대의 묘가 있는 곳이라 하여 삼척을 현(縣)에서 부(府)로 승격시켰으며 세종 29년에야 이 묘를 찾았다고 전한다. 이곳이 바로 한 도승의 예언대로 5대 후에는 제왕이 나온다는 ‘백우금관설화(百牛金棺說話)’가 탄생한 곳으로 누가 보더라도 풍수지리적 명당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 풍수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찾아가 살펴보는 간산(看山)지로 이름난 곳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