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께서 강론 중에사람은 누구나선입견犬과 편견犬이란두 마리의 개와 살고 있다고 하신다아하, 그렇구나그동안 내 안에서사나운 이 두 마리의 개가증상도 느끼지 못하게 수시로심장을 핥고 정신을 물어뜯었구나오늘도 기도 중에 개의 목줄을 풀어준다멀리 떠나가라고다시는 돌아오지 말라고제 탓이오, 제 탓이오, 저의 큰 탓이옵니다가슴을 치며.-허형만, '두 마리의 개' 시는 어디서 오는가? 범종소리나 죽비처럼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시가 있다.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시는 우리의 일상, 그 평범한 삶 속에서 온다. 시를 쓸려면, 우리 일상 속 사람들의 말을(언어를) 잘 관찰하는 태도가 중요하다.시 속의 화자는 어느 날 성당의 주일 미사에서 사제가 하는 강론을 듣는다. 그것은 “사람은 누구나 선입견과 편견이란 두 마리의 개와 살고 있다”라는 말씀이다. 맞다, 그렇지 않은가, 현대인들에게 반려견, 반려묘들은 일상에서 가까운 모습이 되어 있다.이 시는, 견 '犬' 자가 주는 뜻을 묘하게 해석해서 시를 만들고 있다. 견犬은 ‘개’ 견자다. '견'字 는 '개 (犬) 자' 와 '볼 견 (見)' 두 가지의 공통된 발언(소리)을 갖고 있다. 시인은 여기서 시의 모티브를 발견한다. 즉, 사람들은 모두 ‘편견’과 ‘선입견‘을 갖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두 마리의 반려견이다.) 사람이라면 모두가 마음속에 두 마리의 개(편견과 선입견)를 키우고 있는 셈이다. ’반려견‘은 키우되, 편견과 선입견은 버리자는 말씀이다. 재밌다.선입견과 편견은 우리 몸 안에서 서로 물고 뜯고 싸우는 두 마리의 개와 같다. 시의 화자는 마음속에 살고 있는 이 사나운 두 마리의 개를(편견, 선입견)멀리 떠나가라고, 다시는 돌아오지 말라고, 가슴을 치며 목줄을 풀어준다고 말한다. “제 탓이오 제 탓이로소이다”를 오늘도 소리치며 뉘우치면서. 기도 중에 개의 목줄을 풀어준다고 말한다. 가슴을 두드리면서!요즘 세상이 시끄럽고 무섭게 흘러간다. 이 아름다운 봄날에.... 그러나 걱정은 말자. 신은 이 아름다운 나라와 백성들을 반드시 긍율히 여길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