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준위 특별법이 표류상태에 있다. 오는 28일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 이 법안이 올라가기만 하면 가결을 기대할 수 있으나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해병대원특검법 문제를 놓고 힘겨루기가 계속되고 있어 원전 업계를 속태우고 있다.고준위 특별법은 국민의힘이 민주당의 해병대원특검법 공세에 맞서 산자위와 법사위 소집을 거부하고 있어 상임위 통과마저 불투명해졌다. 현재 국회에는 고준위 방폐장 건설과 관련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법안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 계류 중이다. 여야는 특별법 처리의 시급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저장용량과 관리시설 확보·이전 시점 등에서 이견을 보이고 있다. 특별법이 처리되지 않으면 신규원전을 증설하거나 원전을 계속운전 하려는 계획은 결국 발목을 잡힐 수밖에 없다.포화상태에 있는 고준위폐기물을 임시 저장소를 증설하면 원전이 곧 멈출 가능성은 적지만 사용후핵연료 처리 시설은 다급한 게 사실이다. 국회 상임위에 계류 중인 고준위 특별법이 21대 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부지 선정, 설계 등 후속 작업이 줄줄이 연기될 가능성이 있다. 원자력발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방사성 폐기물)를 저장하는 임시 저장시설이 오는 2030년부터 각 원전별로 순차적으로 포화상태에 도달한다. 사용후핵연료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고준위 방폐장에 영구적으로 보관·처리해야 한다. 사용후 핵연료는 국내 24기의 원자력 발전소 가동으로 쏟아져 나온다. 사용후핵연료를 미래 세대의 빚으로 남기지 않으려면 관련법이 조속해 제정돼 건설에 착수해야 한다. 국내 유일의 중수로 원전인 월성 1·2·3·4호기는 사용후핵연료를 임시 보관하는 저장시설인 캐니스터(사일로)와 맥스터(조밀저장시설)로 처리하고 있다. 사용후핵연료는 원전에서 발전에 사용된 우라늄 연료로 중·저준위 방폐물과는 전혀 다르다. 월성원전은 1992년에 도입된 최초의 건식 저장시설보다 좀 더 효율적인 보관을 위해 추가로 맥스터가 건설됐다. 7개 모듈이 증설돼 총 33만6000다발을 보관할 수 있게 됐다. 맥스터는 외부 충격에 대응하고 방사선을 차폐하기 위해 외부 1m 두께의 콘크리트 벽체, 내부의 1cm 금속실린더 등 다중구조로 겹겹이 제작됐다. 자연 냉각 방식이기 때문에 전원상실, 설비고장 등의 우려를 하지 않아도 된다. 캐니스터와 맥스터는 ‘부지내 임시저장시설’에 불과하기 때문에 현재 이곳에 있는 저장된 중수로 사용후핵연료는 추후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인 중간저장시설과 영구처분장이 건설되면 그곳으로 옮겨 저장된다. 문제는 최근 원전 가동이 증가함에 따라 이 원전들의 저장시설을 제때 확보하지 못하면 임시시설마저 포화상태에 이르러 모두 가동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 각 원전마다 임시저장시설 저장 한계시점이 다가오지만 영구처분시설 건설은 특별법 부재로 첫발도 내딛지 못한 실정이다.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에 따르면 절차에 착수한 시점으로부터 20년 뒤 중간처분시설을 확보할 수 있고, 37년 뒤 영구처분시설을 마련할 수 있다. 영구처분시설은 2060년 이후에나 운영할 수 있다. 사용후핵연료를 영구 처분하기 위해서는 당장 부지선정 등에 착수해도 가동 중인 원전들이 중단되는 시점을 맞출 수 없는 셈이다. 포화 시점이 임박한 사용후핵연료를 당장 보관할 임시저장시설 증설이 시급한 이유다.전력수급계획에 이상 없이 원전 사용량을 늘리기 위해서는 사용후핵연료 영구 처분시설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 정부는 올해 연말까지 고준위 방폐장 부지 선정 등 본격적인 건설을 추진한다는 계획이지만, 방폐장 건설과 관리 등에 대한 내용을 담은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 특별법(고준위 특별법)’은 21대 국회 상임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고준위 특별법은 1978년 첫 원전 가동 이후 원전 부지에 쌓여 있는 1만8600톤 가량의 사용후핵연료를 안전하게 처리하기 위한 법이다. 21대 국회 임기인 5월 29일까지 법안이 처리되지 못하면 자동 폐기된다. 원전 상위 10개국 중 방폐장 부지 선정에 착수조차 못 한 나라는 인도와 한국뿐이다. 현재 한빛원전은 2030년부터, 고리원전은 2032년부터 포화상태가 된다. 고준위 특별법이 5월까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면 22대 국회에서도 장담할 수 없다. 민생은 뒷전이고 정쟁에만 몰두한 최악의 21대 국회 오명을 씻으려면 21대 국회 임기 내에 백년대계 고준위 특별법을 꼭 통과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