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렸을 때에는 모든 것이 단순했다.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사는 것도 복잡하지 않았다. 밥 먹고 간식이라고 해도 떡이나 엿 그리고 눈깔사탕 정도였던 것 같다. 입는 것도 부자는 비단 옷, 평범한 사람은 무명 옷, 사는 것도 기와집 아니면 초가집이었다. 그러니까 어른도, 아이들의 삶도 복잡하지 않았다. 나와 이웃의 삶도 크게 차이가 없었다. 또한 부자나 가난한 사람의 삶의 질도 별 차이가 없기 때문에 살아가면서 상대적인 스트레스도 그 만큼 적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세상은 점차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과학의 발달로 인하여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신기한 물건들이 우리 주위에서 선을 보이기 시작했고, 그때까지는 상상도 못한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사람들도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들을 통해서 들은 세상 밖의 소식은 신비함 그 자체였다.   이러한 주위 환경의 변화는 사람들의 마음에도 변화를 가져오기 시작하였다. 나도 남들이 가진 것들을 갖고 싶고, 남들이 다녀 온 다른 나라도 궁금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조건이 중요하게 생각되었고 남들과의 상대적 빈곤감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마음 편한 세상이 아니었다.   우리나라 옛 속담에 남의 떡이 커 보이고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남들이 누리는 풍요가 내게는 그림의 떡이라고 생각되니 어떻게 해서라도 따라잡아야겠다는 욕심에 무리한 방법까지 동원하게 된다. 요즘처럼 보이스피싱이 활개 치는 세상은 없었던 것 같다. 평범한 삶을 사는 나 역시 이미 10번이상의 각종 사기 전화나 메시지를 받았으니 다른 사람들이 당한 피해를 짐작할 수 있다.   세상은 정말 편리하고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는데, 반면 사람들의 심성은 점점 나빠져 가는 것 같아서 슬프다. 과학의 발달도 기쁘지만은 않다. 갑작스런 기후변화로 인해 생태계가 파괴되어 가고, 전 세계가 홍수며 산불이며 각종 자연재해가 잇따르고, 그 결과는 사람은 물론 동물의 세계도 수난을 받고 있지 않은가. 또한 그릇계의 혁명이라는 플라스틱의 발명은 인간에게는 편리한 도구가 되었지만, 플라스틱 폐기물로 인해서 동물들도 바다에서, 산에서 비참하게 죽어가고 있는 현실이다.   또한 인공지능 로봇은 이미 사람과 같은 감정표현까지 할 수 있는 단계에 까지 왔다는 뉴스를 들으며 은근히 두려움을 느낀다. 우리가 어릴 적에 보았던 공상 과학만화에 나오던 것들이 지금 현실이 되어있는데, 요즘 공상과학영화에서 보는 내용들이 머지않아 현실이 되서 돌아오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다. 로봇이 사람을 공격하고, 인공지능 AI에게 인간의 영역을 다 빼앗기면 인간은 무엇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야 할까? 지금도 식당에서 음식을 나르는 로봇을 보면 먼 훗날이 두렵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나이가 들어서 그때까지 살지 못하겠지만, 우리의 손자, 손녀들 세대에는 어떻게 될까하는 두려움이다. 쓸데없는 노파심이라고 생각 하겠지만 이 두려움이 현실이 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지 않을까. 또한 나 같은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보면 지금 인간들이 과학의 이름으로 인간과 흡사한 AI 로봇을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에 가깝지 않은가 하는 걱정도 되지 않을 수 없다. 어쨌건 물리적으로는 좋은 세상이고 편리한 세상이 되었다. 모든 것이 컴퓨터, TV, 스마트폰 등의 기계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다. 그러니까 그러한 기계들을 잘 다루지 못하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불편하기 그지없다. 젊은이들은 거의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것 같다. 어린이들조차도 제법 잘 다룬다. 가장 불편해 하는 사람은 노인세대들이다.   햄버거 하나를 시키려고 해도 키오스크에서 주문하라고 한다. 무딘 손으로 더듬더듬 누르다가 잘 안되면 뒤에 줄서서 기다리는 사람들 보기가 민망해서 포기하기도 한다. 요즘은 일반 식당에서도 거의 대부분 기계에다 주문을 한다. 은행도 집에서 가까운 지점이 갑자기 문을 닫는다. 젊은 사람들은 전화나 인터넷으로 은행 일을 보기 때문에 손님이 줄어들어서 규모가 적은 지점들을 정리한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노인들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일들을 새롭게 배워야할 처지가 되었다. 그러나 익숙지 않은 기계들을 배우려니 쉽지가 않다. 자녀들에게 물어보면 귀찮아하며 마지못해 가르쳐 준다. 전에 가르쳐 준 것을 깜빡 잊고 또 물어보면, 전번에 가르쳐줬는데 또 묻는다고 핀잔을 준다. 자존심이 상 하지만 꾹 참고 배운다. 그러나 며칠 지나면 또 잊어버리니 어찌할까.   그러나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이제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않고서는 이 달라진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우리 나이가 되면 자식들에게 의지하면서 편안히 살아갈 수 있었지만 이제는 자식들도 내 곁에 없고 설령 있다 하더라도 그들에게 어른 대우를 받으며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 된 것을 어쩌겠는가? 내게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 어색하다고, 새로운 것을 배우기 어렵다고, 발전하는 세상의 문물들을 꾸준히 배워가지 않으면 어쩌면 아주 기본적인 내 앞가림조차도 할 수 없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부디 앞으로는 새로운 환경이나 기술을 개발하더라도 인간만이 아닌 동물들의 세상도 보호하고, 젊은이들만이 아닌 노인세대들도 적응하기 쉬운, 모두가 윈윈 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또한 정부도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세상에서 커져만 가는 고령 인구들의 삶이 뒤쳐지지 않도록 꾸준한 교육적인 지원을 하는데 최선을 다해주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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