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따가운 햇살이 포장도로 위에 좔좔 쏟아지는 날. 피서 겸 유적지 탐사 및 학술 모임에 도솔산 수목이 기운을 잃고 축 늘어진 전북 고창 선운사를 찾았다. 넓은 광장이 우리 일행의 가슴을 안았다. 대사찰 선운사는 창건 당시에는 89개의 암자와 189개의 건물 그리고 24개소의 수도를 위한 석굴이 있었던 대가람이었다고 사적판에 기록되고 있다. 고색창연한 고찰을 유람한 후 차례에 따라 문학의 시간을 가졌다. 필자가 먼저 영문학자요, 수필가인 피천득님의 수필 ‘인연’을 읽고 저마다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 선운사를 찾은 까닭은 바로 인연과 관계하고 있는 꽃무릇이라고도 불리는 ‘상사화’ 인연이다. 선운사의 매력 중 하나가 본전으로 들어서는 길에 상사화와 더불어 3·4월이면 온 사천이 빨강 동백꽃이 무구한 군락을 이루고 피어난다는 것이다. 한 사진작가의 해설에 의하면 붉은 동백꽃이 통째로 툭툭 떨어지는 모습은 상사화처럼 사랑의 슬픔을 느끼게 한다고 한다. 상사화(相思花)는 수선화 과(科)에 속하는 다년초로 화경(꽃줄기)의 높이는 50~70센치이고 땅 속의 인경 (비늘줄기)은 둥글고 껍질은 흑갈색에 수근(뿌리)이 있으며 잎은 넓은 모양이다. 선형(부채꼴)으로 폭이 18~15미리이다. 8월에 담홍색의 꽃으로 산형(우산 모양)으로 화서(꽃차례)로 피는데, 꽃과 잎이 서로 등져서 만나지 못한다고 하여 상사화로 이름 지었다고 한다. 수술은 6개이며 암술은 1개로서 열매를 맺지 못한다. 다만 뿌리의 분리로 종자를 번식한다는 것이다. 꽃이 필 때는 잎이 없으므로 잎은 꽃을 생각하고 꽃은 잎을 생각한다고 하여 서로가 어긋남으로 상사화라 이름이 생겼다. 사물들 사이에 서로 맺어지는 관계가 있고 사람으로서도 인정적 관계를 가지게 되는 것이 연분이다. 이런 인연(因緣)을 두고 불교에서는 결과를 내는 직접적인 원인인 인(因)과 간접적인 연(緣)을 말한다. 한가지 예를 들면 쌀과 보리는 그 씨가 ‘인’이고 노력·자연·거름 따위가 ‘연’ 인 것이다. 사람의 관계는 만남이 가장 이상적이고 길가는 나그네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했다. 인연을 아는 것은 사고요. 사고를 통해서만 감각은 인식이 되어 소멸되지 않을뿐더러 본질적인 것이 되어 그 속에 있는 것이 빛날 수 있다. 첫사랑은 처음으로 느끼거나 맺은 사랑으로 순결한 것이고, 짝사랑은 이성 사이에서 어느 한편에서만 혼자 사랑하는 척애로 순수한 사랑이라 한다. 그리고 연분은 서로 관계를 가지게 되는 인연으로 부부관계가 될 수 있는 결과다. 사랑은 인연으로 맺어진 경우도 생기고 인연으로 사랑이 성립되는 경우도 생긴다. 사랑은 아끼고 위하며 한없이 베푸는 일과 그 마음이며 남녀 간에 정이 들여 애틋이 그리는 일과 그러한 인연이다. 그리고 사랑은 동정하여 너그럽게 베푸는 애정이다. 또한 사람이나 동물이 아닌 사물을 몹시 소중히 여기는 마음도 사랑이다. 기독교에서는 긍휼과 구원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이 큰 사랑이다. 기독교 성경 66권을 줄인 것으로 대표적인 말씀이, ‘요한복음서’ 3장 16절의 말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신다. 미움은 말썽을 일으키고 사랑은 온갖 허물을 덮어준다는 것이다. 윤리학에도 사랑을 하는 것은 즐겁지만 사랑을 받는 것을 즐겁지 않다고 했지만 사랑은 오고 가는 것이 이미 인연인 것이다. 사랑의 불길은 그것을 알아차리기 전에 이미 마음을 태우고 있다. 사랑으로 맺은 인연이 반드시 그곳에 진정성이 있다고 하지만 사랑에도 두 가지 시련이 있다면 그것은 전쟁과 평화라 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를 초월하는 것이다. 사랑은 자기희생이고, 우연에 의존하지 않는 유일한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