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시(戀詩) 읽기 첫 번째 글입니다. 남녀 간 사랑을 포함해 사랑을 노래하는 시는 모두 연시로 다루려 합니다.시인 문태준은 세 번째 시집 《가재미》(문학과지성사, 2006) 발간 전후부터 큰 주목을 받아왔습니다. 표제작 <가재미>는 시인의 대표적인 시이자 대중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시이지요. 시인은 2005년 '시인과 평론가가 뽑은 올해의 가장 좋은 시인'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이 시는 나란히 곁에 있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죽어가는 자가 산 자에게 건네는 마지막 위로의 이야기이기도 하지요. 사람 사이의 근원적인 교감과 죽음을 넘어서는 사랑을 노래하고 있어요.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 투병 중인 그녀가 누워 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화자는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서 암 투병 중인 이의 병실에 와 있습니다. 산소마스크를 쓰고 있는 위독한 상황이군요. 이후 시인은 어머니처럼 자신을 돌보고 아껴준 큰어머니라고 밝혔습니다.   아픈 그녀는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에 비유됩니다. 아가미로 숨만 쉬며 겨우 살아 있는 모습이지요. 생명력이 소진되어 삶에서 멀어지는 한 생애를 담담히 전하고 있습니다.두 마리 가재미, 나란히 눕다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그녀의 곁에서 나는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습니다. 한 마리였던 가재미가 두 마리가 되는 순간이에요. 그녀의 가재미 되기는 몸통 전체를 흔들며 물의 파랑 속을 헤치며 살아온, 척박하고 험난했던 생애를 은유해요.   반면 나의 가재미 되기는 스스로 가재미 되어 그녀의 아픔에 동화되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나-가재미가 그녀-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는 울컥 눈물을 쏟아내요.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아 붙은" 죽어가는 눈으로만 겨우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곁을 내어준다는 것은 내 마음의 한 장소를 비워내어 타인을 들이는 일입니다. 이 시는 곁에 나란히 있는 두 사람이 함께 곁불을 쬐듯 나누는 공감과 소통의 언어를 보여줍니다.죽음을 앞둔 파랑 같은 날들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 나는 그녀가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파랑 같은 날들을 보며 나는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속 삶"을 떠올립니다. 삶의 파랑을 온몸으로 맞으며 헤쳐온 험난했던 생애를 기억하고 싶은 것이지요. 이런 그녀가 이제 "죽음 바깥의 세상"을 볼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어요.   삶의 편에서는 상상으로라도 죽음을 볼 수 있지만, 죽음의 편에서는 삶을 볼 수 없습니다. 그녀는 삶을 볼 수 없는 세상으로 향해가고 있어요. "한쪽 눈이 다른 쪽 눈으로 캄캄하게 쏠려버"린 무너진 몸에는 서서히 죽음의 냄새가 스며듭니다.죽어가는 자의 잔잔한 위로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속에 나란히 눕는다. 산소호흡기로 들이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죽어가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섣부른 위로나 희망찬 격려는 값싼 거짓말이 될 수 있습니다. 화자가 선택한 것은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속에 나란히 눕"는 행위입니다.   죽음으로 향하는 그녀의 시간은 되돌릴 수 없지만, 그 시간 곁에서 나란히 함께해 줄 수 있지요. 그저 온화한 눈빛으로 나란히 함께 있는 것, 열렬히 또는 격렬히 아끼지는 못했으나 오랫동안 끊이지 않고 아껴왔음을 보여주는 것... 이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무엇이 사랑일까요.   마지막 행에는 물을 적셔주는 행위가 등장하는군요. 내가 그녀의 몸에 물을 적셔주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내 몸 위에 적셔주고 있지요. 이렇게 우리는 죽어가는 자의 위로와 사랑을 받으며 죽은 자를 기억합니다. 그리고 남은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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