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사 전등불빛이 밤낮 없이 환하지만 기억이 겨우 남아 있을 정도의 내 어린 시절에는 굳이 시골이 아니어도 호롱불을 밤 조명으로 킨 곳이 많았습니다. 6.25 전후 재건이 진행되던 시대였던지라 그때는 우리나라도 전기가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위가 뾰족한 굴뚝 모양에 심지가 딸린 뚜껑과 손잡이가 달린 하얀 도기 호롱을 요긴한 조명 도구로 썼습니다. 
 
찻잔 크기의 호롱에 등유를 채우고 불을 붙이면 노란 불꽃이 타오르면 품질이 그닥 좋지 않던 등유에서 나오는 그을음도 불꽃 따라 일렁이며 올라갔습니다. 등잔에 넣을 기름은 동네 가게에서 됫병으로 사서 쓰기도 하고 밤이 되면 아예 ‘석유 사시오’ 외치며 등잔 기름을 팔러 다니던 장수도 있었습니다. 
 
호롱불이 올라간 등잔대 아래는 그림자가 져서 속담 그대로 ‘등잔 밑이 어두’웠습니다. 지금은 초등학교로 명칭이 바뀐 국민학교에 입학 후에는 30촉짜리 백열등 아래서 숙제를 했으니 전깃불은 그보다 먼저 보급되었겠지요.
 
몇 년 전에 우연히 들른 시골 한 카페에서 한켠에 꾸며놓은 벼룩시장을 구경하다가 파란 등갓과 기름통이 달린 낡은 석유 남포를 하나 구입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쓸 일이 없어진 고물로 내놓았던 것이라 기름통의 뚜껑이 달아나고 심지도 많이 닳아서 실제로 쓰일 일은 없겠지만 커피 한 잔 정도의 값으로 사서 거실 벽에 달아두고 가끔씩 내려서 먼지를 닦습니다. 천정 가까이에 매달아 놓아 대부분은 잊고 지내지만 그래도 한참 만에 한 번씩 내려 먼지를 닦게 됩니다.
  ‘남포’는 원래 영어의 램프(lamp)가 개화기에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변형되어 쓰이던 명칭입니다. 어른 주먹 크기의 호롱불빛에 비하면 심지도 더 크고 심지를 감싼 유리 몸체가 불빛을 확산시켜서 남폿불은 밝기도 물론이거니와 빛이 미치는 범위도 더 큰데다 바람이 불어도 안전하다는 것이 큰 이점입니다. 그렇지만 그 빛이 항상 환하려면 남포의 심지를 안고 있는 유리통이 깨끗해야 합니다. 한참 쓰다 보면 등유에서 나온 그을음이 남포 유리 안쪽에 남거나 유리 바깥면에 묻은 생활 먼지가 빛을 흐리게 할 때는 깨끗하게 닦아 주어야 완전한 조명 역할을 했습니다.
  지금처럼 도심지가 불야성을 이루고 집집마다 밤에 전기 조명이 환한 시절에 웬 남폿불 타령이냐고 하시겠군요. 이제는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낡은 남포 하나를 두고 궁상을 떤다고 혀를 찰 이도 있겠지요. 그런데 남포의 등갓과 유리를 닦으면서 그을음에 그을리고 먼지 묻은 내 마음도 들여다보고 닦게 되더라면 이해해 줄까요? 나날의 생활 속에서 알게 모르게 내 마음에 그을음이 쌓여갑니다. 
 
외진 곳에서 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어울려 부대껴 살다 보면 가족과도, 친지들과도 마냥 좋은 시간만 있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되는 까탈이 외부로부터 생겨나기보다 고스란히 내 안에서 일어나는 구름이고 바람입니다. 그러면 먼지 쌓인 남포를 내려 등갓도 닦고 심지를 둘러싼 유리통을 닦으며 내 마음을 들여다 보아야지요. 낡은 남포는 이제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내 마음을 비추어 나만이 아는 세상을 보게 합니다.
 
너무 오래 된 파란색 등갓은 먼지를 닦아낸 뒤에도 맨 처음에 그랬을 것처럼 반짝이지는 않습니다. 유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닦느라고 닦아도 뿌연 빛이 싹 가시지는 않고요. 아무래도 유리 안쪽을 닦지 못하니까 그럴 것 같기도 합니다. 사람이 나이 먹었다는 증거 중 하나가 웃음이 사라진 표정이라고 어디서 들었습니다. 
 
물론 나이든 모든 이가 다 그렇지는 않지만 내게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말입니다. 살면서 나도 모르게 슬며시 웃음을 잃었고 웃음기 없이 하는 대화나 행동은 자주 나의 의도와는 다르게 전달되어 오해를 만들더군요. 나이 쉰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자기가 책임져야 한다던 말도 새삼 생각이 납니다. 
 
예전에 봤던 영화 ‘빠삐용’의 한 대사가 떠오릅니다. 자신은 죄가 없다며 수차례의 시도 끝에 탈옥에 성공한 죄수 가 위험한 탈출 과정에 죽을 위기를 겪습니다. 의식이 희미해져 가는 중에 꿈인 듯 환영인 듯 다시 재판장 앞에 서서 자신은 무죄라고 주장하지만 손가락으로 그를 가리키며 재판장은 ‘너의 죄명은 인생을 함부로 허비한 죄’라고 했습니다.
  낡은 남포의 유리와 등갓을 닦다가 불현듯 나 자신이 낡은 나의 남포등과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무리 힘주어 닦아도 맨 처음 그대로의 파란색과 원래의 투명함으로는 돌아가질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을 느낍니다. 없어진 남포 석유통의 뚜껑처럼 내가 잃어버리고 살아 온 것도 생각해 봅니다. 지금 알게 된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하는 생각으로 고개를 돌려 어리석었던 지난 날, 지난 시간의 내 모습을 돌아봅니다. 하지만 이제야 알게 됩니다. 세상사 모든 것에는 다 그것만의 때가 있다는 것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