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졸업반 늦가을 어느 날일이다. 굽이 몹시 높은 구두를 한 켤레 사서 마루 밑에 감추었다. 그리곤 시간이 날 때마다 마루 밑에 감춰 둔 구두를 꺼내어 어머니 몰래 신어보곤 했었다. 그 당시 대학 예비고사가 끝난 후 친구들과 명동에서 어울리기로 약속했다. 하여 짧은 치마, 서투른 화장법으로 어른 흉내를 내며 하이힐을 신고 처음으로 외출을 했다.   마치 오리걸음처럼 어색한 걸음걸이로 조심스럽게 길을 건널 때이다. 횡단보도 중간쯤에 이르러서 발이 옆으로 꺾이는가 싶더니 ‘우지직’하는 소리와 함께 구두 굽이 부러지는 게 아닌가. 길 한복판에서 순식간에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가까스로 몸을 추슬러 일어나 보니 어느새 신호등이 바뀌었다.    마침 교통정리를 하던 교통순경이 내게 다가왔다. 울상을 지은 채 한 손에 구두를 들고 어쩔 줄 모르고 서있는 나를 보자 사태를 짐작하곤 자신 곁에 꼭 붙어있으라고 권한다. 하는 수 없이 필자는 교통순경 곁에 바짝 붙어 위기를 모면하게 되었다. 간신히 길은 건넜지만 구두가 문제였다. 명동까지 아직 갈 길은 멀고, 집으로 돌아서 가자니 약속 시간이 임박했다.   하는 수 없이 구두를 벗어 양손에 들고 맨발로 전철에 올랐다. 그러자 전철 안 승객들이 나를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그 때 수치심이란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약속 장소에 맨발로 나타난 필자를 보고 친구들이 놀라는 표정이다. 덕분에 그들이 돈을 모아 모 메이커의 구두를 사주는 바람에 나는 난생 처음 비싼 구두를 신어보는 호사를 누리기도 했었다.    그 시절 필자를 난감하게 만들었던 하이힐을 신을 때마다 ‘편한 신발을 젖혀놓고, 하필 굽 높고 발이 불편한 하이힐을 왜 여성들은 선호할까?’ 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었다. 아마도 여성들이 하이힐을 신으면 높은 굽 탓인지 긴장하게 되고 그 긴장감이 다리를 한층 아름답게 하여 하이힐을 즐겨 신는 것이라고 나름대로 답을 내렸다. 이런 생각이 어느 정도 맞는다는 것을 최아룡이 지은 『우리 몸 문화 탐사기』 라는 책에서 하이힐에 대한 고찰을 읽고 새삼 깨달았다.   이 책 내용에서 무엇보다 인상 깊은 것은 하이힐을 신고 출근 시간에 횡단보도나 전철역 계단에서 달리기를 하는 여성들은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란다. 가까운 일본에서도 아무리 바빠도 여성들이 하이힐을 신고 달리지는 않는다고 한다. 이런 풍경은 사실 요즘은 많이 개선되었다. 하이힐보다 편한 운동화나 굽낮은 구두를 선호하는 추세여서다.   그러고 보니 우리 민족이 성미가 급하긴 급한가 보다. 하긴 필자도 젊은 날 걸핏하면 하이힐을 신고 만원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정류장에서 힘껏 달렸었다. 이렇게 하이힐을 신고 힘겹게 달려선 사무실에 도착하면 편한 슬리퍼로 갈아 신는 모습도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란다. 반대로 외국은 출, 퇴근 할 때는 편한 운동화로 신고 사무실에 도착해서는 오히려 하이힐로 바꿔 신는다고 한다.    이는 직장의 단정하고 좋은 이미지를 안겨 주기 위함이다. 또한 하이힐이 실은 오물을 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구두라는 내용에선 뜻밖의 사실에 놀라웠다. 베르사유 궁전에 화장실이 없어 정원에 던져진 오물을 피하기 위해 하이힐을 신기도 했단다. 하이힐이 본격적으로 유행한 것은 17세기 프랑스의 루이 14세에 의해서였는데 그는 작은 키를 더 크게 보이려고 굽 높은 구두를 신었다고 한다.    그로인해 하이힐이 귀족들 사이에 유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역사를 지닌 하이힐은 예나 지금이나 여성들의 관능미를 자랑하는 일에 일조를 해왔다. 가늘고 아찔할 정도로 긴 스틸레토 힐 위에서 여성이 지닌 관능미 자랑은 재고할 필요성이 있다. 그것은 멋이라기보다 스스로 여성성에 자신을 가두는 게 아닐까 싶어서이다. 몸에 가해지는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신의 아름다움을 하이힐을 통해 추구하므로 우린 하이힐은 권력이라고까지 말했었나보다. 이제 하이힐의 권력에서 해방되는 나이에 이르고 보니 지난날 하이힐에 옥죄었던 젊음이 불현듯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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