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도스 공항에 도착하니 취재진이 몰려왔다. 공항 개항 최초로 방문하는 한국 여행객을 취재하러 나왔다. 공항으로 들어서니 환영식이 열렸다. 무용수를 비롯하여 가수, 악기연주 등이 이어졌다. 우리가 국빈이 된 기분이었다. 내몽골은 가스 및 석탄, 희토류가 많이 생산되어 중국 내에서 GDP 1위라고 한다. 인구의 구성은 몽골족이 20%, 한족이 80%라고 한다. 가을 날씨처럼 맑고 바람이 산들산들 불어 덥지 않았다. 이곳에서 사막을 사해沙海라 부른다. 그래서 배처럼 생긴 차가 여행객을 실어 나른다. 낙타를 타기 위해 다가서자 낙타가 다소곳이 무릎을 끓는다. 편안하게 쌍봉에 앉아 사막을 돌았다. 다음날은 지프차를 타고 사막을 한 바퀴 돌았는데 너무 상쾌해 2번 탔다. 이어서 레일바이크와 짚라인, 바이킹까지 탔다. 버스를 타고 좌석에 있는 안전벨트를 안 매면 귀뚜라미처럼 울어댄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다 보니 풍차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고 바람에 한가로이 도는 모습이 정겨웠다. 또한 어린 옥수수가 많이 자라고 있었다. 초원 마을에 도착하니 마을 사람들이 환영해 주었다. 도수가 높은 술이 준비되었고, 견과류를 안주로 내주었다. 조금 후 우리를 환영하는 듯 단비까지 내렸다. 매우 건조한 곳이라 반가운 손님이 오랜만에 찾아온 듯 단비가 참 정겨웠다. 저녁 식사는 게르 안에 마련한 만찬장에서 구운 양고기를 놓고 흥겨운 시간을 가졌다. 다음 날 아침 찬란한 햇살에 이슬방울이 반짝반짝였다. ‘오솔레미오’ 노래가 절로 나왔다. 칭기즈 칸 왕릉을 방문하였다. 왕릉은 없고 건물 안에 칭기즈 칸 동상과 그에 관련된 자료를 전시하였다. 칭기즈 칸은 자신의 어깨에 매를 앉히고 다녔단다. 어느 날 사막에서 그가 조그만 종지로 물을 먹으려고 하는데 매가 물을 엎질러 버렸다. 오랜 시간 광야를 헤매느라 물을 마시지 못해서 목이 몹시 탔다. 매우 화가 났다. 계속 엎지르자 결국 칼로 매를 죽여 버렸다. 그리고 일어나서 물속을 보니 독사가 죽어 있는 것을 보았다. 물을 먹었더라면 죽을 수도 있었을 텐데, 매가 그것을 알고 물을 엎어 버렸던 것이다. 칭기즈 칸은 매의 죽음을 크게 슬퍼하고, 고이 묻어 주었다. 그리고 금으로 동상을 만들고 한쪽 날개에 ‘분개하여 판단하면 반드시 패하리라’라고 새겨 넣었다고 한다. 왕릉에서 나와 초원에 나가 마차를 탔다. 마차에 엔진이 달려있어 말이 힘들이지 않고 마차를 끈다. 하이브리드 마차이다. 그리고 말을 타고 한 바퀴 돌았다. 말은 낙타처럼 편안하지 않았다. 초원은 모를 꽂아 놓은 것처럼 풀이 자란다. 이곳에서 큰 호텔을 대주점(大酒店)이라 부른다. 이곳은 가로수로 은사시나무를 많이 심어 놓았다. 이곳 인구는 200만 정도 산다고 한다. 궁에는 나무가 없는데 그 이유는 자객을 방지하기 위해서란다. 관광개발 초기라 아직 안마 문화가 없었다. 케이블카를 삭도(索道)라 부른다. 세계에서 제일 큰 소원돌탑을 돌았다. 소원 세 가지를 빌며 세 바퀴를 돌았다. 멀리 바라보니 외몽고로부터 황사가 불어와 하늘이 뿌옇다. 저녁때 호수에 설치된 분수에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어두워지자 현란한 조명쇼가 시작되었다. 큰 건물에서 비치는 서치라이트와 어우러져 현란한 풍경을 연출하였다. 보름달이 연인처럼 빌딩 옆에 다정하게 떠있었다. 우리가 탄 비행기는 중국 임시전세기였다. 돌아올 때 비행기 창가에서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지상의 풍경을 바라보며 드론처럼 지상의 맨살을 생생히 관찰하였다.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이 하얀 솜을 여기저기 뿌려놓은 듯하다. 고도가 높아지니 희뿌연 안개가 시야를 가려 오리무중 속이다. 거대한 운해 위를 비행기가 날고 있었다. 몽골에서는 한국을 솔롱고스(Solongos)라고 부른다. 몽골어로 솔롱고스는 ‘무지개가 뜨는 곳’이란다. 어릴 적 우리가 살던 이 나라는 무지개가 잘 떴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무지개를 보기가 무척 힘들다. 무지개는 희망이다. 무지개가 무척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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