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6~27일 개성에서 열린 남북적십자회담에서 쌀 50만t과 비료 30만t 등 대규모 지원을 요구한 것은 남북관계 진전에 대한 우리 정부의 의지를 시험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또 최대치를 높여 가능한 많은 양의 쌀을 받아내기 위한 전략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쌀 50만t은 국내 쌀보다 비교적 저렴한 국제쌀 단가 t당 500달러를 적용해도 수송비를 포함하면 2억5000만달러가 넘는 규모다. 남측은 2000년 외국산 쌀 30만t과 옥수수 20만t을 차관 방식으로 지원한 이래 2005년과 2006년을 제외하고 매년 40만t의 쌀을 지원해왔다. 2005년에는 국내산 쌀 40만t과 외국산 쌀 10만t 등 50만t의 쌀이 차관방식으로 지원됐고 북한 핵실험이 있었던 2006년엔 대한적십자사의 수해 지원 차원에서 10만t의 쌀이 무상 지원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 북한에 지원된 쌀은 이번에 압록강 범람으로 극심한 수해를 입은 신의주 지역에 보낸 5000t이 유일하다. 북한은 남북관계가 활기를 띠었던 참여정부 때 만큼의 대북지원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천안함 사건에 따른 5.24대북조치를 유지하고 있는 정부로서는 수용하기 쉽지 않은 규모 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이 참여정부 수준의 쌀 지원을 요구하는 것은 남측에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보이라는 것"이라며 "쌀 지원을 계기로 단순한 인도적 지원보다 더 높은 수준의 협력사업들이 활기를 띨 수 있도록 우리 정부가 유연성을 발휘하길 기대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북한은 남북적십자회담 첫째날 회의에서 우리 정부에 쌀과 비료 지원을 압박하면서도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적십자회담 북측 단장인 최성익 조선적십자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은 회담 첫째날 전체회의 모두발언에서 "지금 북과 남의 온 겨레가 북남 사이의 화해와 협력이 이뤄지고 북남관계가 하루빨리 풀리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같은 날 오후 회의와 둘째날 회의에서는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성의에는 성의로 대하면서 회담을 잘 해야 한다", '때를 놓치지 말라는 말이 있다. 기회는 언제나 있는게 아니다"는 말로 우리 정부를 압박했다. 대북 쌀 지원이 이뤄지면 쌀 재고 증가문제가 해결되지만 정부는 대규모 지원이 '천안함 출구전략' 수순을 밟는 것으로 인식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이 정도의 대규모 지원은 인도적 고려만으로 결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남북관계 상황에 비춰 결정될 사안"이라고 말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이 최근 남측 내부에서도 쌀 지원 문제와 관련해 (대규모 지원 등)여러가지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상황을 고려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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