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었을 때는 누군가 나이를 물어오면 내 나이보다 서, 너 살 위로 부풀려 말했다. 그 때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제 나이로 보이거나 어려 보이는 게 왠지 싫었다. 당시엔 흔히 말하는 동안의 얼굴이어서인가. 그럼에도 걸핏하면 타인들은 그 말을 듣고도 필자 나이보다 몇 살 어리게 봐줬다.
  요즘은 어떤가. 제발 다만 한 살이라도 어려 보였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얼굴이란 오장육부의 기운이 서린 곳이어서 내면의 기운이 이곳으로 올라와 머무는 곳이란다. 그래 관상학에선 얼굴만 보고도 상대방 운을 비롯, 성격 등을 점치곤 한단다. 이게 아니어도 나이 들면 가장 피하게 되는 게 거울 보는 일이다. 이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노쇠를 애써 피하고 싶은 여자의 심리 때문 일 것이다.
 
필자 역시 그렇다. 거울 속에 비추어진 주름진 얼굴을 바라보노라면 예전에 그토록 풋풋하던 젊음은 간 곳 없다. 어느 땐 낯선 사람이 자신을 바라보는 듯한 착각마저 일기도 한다. 언젠가 모임 단톡 방에 20대 시절 사진을 올렸더니 어느 회원은 깜짝 놀라워한다. 심지어 그 사진이 필자 얼굴이 맞느냐며 물어오기까지 했다. 현재 얼굴과 판이하게 다르단다. 나이 탓인지 그 말 또한 서운히 들렸다.
 
당연히 나이 들면 누구나 외모는 변하기 마련이다. 젊은 날 얼굴을 고스란히 지녔다면 어찌 흐르는 세월을 탓하랴. 이로보아 세월만큼 강한 게 없다. 시간은 철석도 변화 시킨다. 아무리 단단한 바위도 세월이 지나면 풍화작용으로 깎이어 제 모습을 잃는다. 철도 그렇잖은가. 녹이 슬어 부식되니 세상사 영원불멸로 생존하는 것은 그 어느 것도 없다. 하물며 인간인들 온전하랴. 오죽하면 세월 앞에 장사 없단 옛말도 있을까.
 
뿐만 아니라 하늘을 나는 새라도 떨어뜨리는 막강한 권세도 결코 그 힘이 영원하진 않잖은가. 생성(生成)이 있으면 반드시 소멸(消滅)도 있기 마련이다. 흔히 이를 우주에도 빗대어 표현한다. ‘달도 차면 기운다’라는 말이 그것이다.
 
권력도, 젊음도, 부귀와 영화도 영원한 것은 없다. 언젠가는 스러지고 상실한다. 이런 진리를 너무나 잘 알면서도 우린 우매한 탓인지 잃어진 젊음을 되찾고 싶어 안간힘 쓴다. 성형을 하고 얼굴에 ‘보톡스’라는 물질을 넣고 맛사지 숍을 찾기도 한다. 주름살을 펴지게 한다는 광고에 현혹돼 비싼 화장품을 구입하기도 한다. 젊음을 되찾기 위하여 온갖 방법을 강구하는데 혈안이 된 것이다. 그러나 어찌 자연의 순리인 인간의 노화를 막을 수 있으랴. 살갗 거죽을 문지르고 주름을 편다는 보톡스를 맞은들 인체의 장기가 가져다주는 노쇠는 현대의학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노릇 아니던가.
  그럼에도 요즘처럼 동안을 되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세태에 ‘거울도 안 보는 여자’가 존재한다. 그것이 비록 대중의 입을 타고 날개를 달고 있는 유행가사 속이지만 말이다. 노래 ‘거울도 안 보는 여자’가 그것이다.‘사랑 찾아 헤매 도는/쓸쓸한 여자/오늘 밤은 그 어디서/외로 움을 달래나 /눈가에 머문 미소는/내 마음 흔들고/수수한 너의 옷차림 나는 좋아/거울도 안보는 여자/거울도 안보는 여자/외로운 여자/오늘 밤 나 하고/우우 사랑할거나’ 요즘처럼 외모지상주의 시대에 거울도 안 볼 정도로 자신의 외모 가꾸기엔 관심도 없는 여성이 있을까? 하다못해 구순(九旬)이신 필자의 친정 노모도 분홍색 립스틱을 사드리면 무척 좋아라한다. 어디 이뿐이랴. 옷가게를 지나치다가 색깔 고운 옷이 눈에 띄면 사달라고 조른다.
 
하물며 노인도 이러할진대, 더구나 젊은 여성이 거울도 안 볼 정도라니…. 이 노래 가사처럼 수수함을 벗어나 외로움에 지쳐서 혹시 삶의 의욕을 잃진 않았을까? 괜스레 염려된다. 하긴 사회생활에 전념하다보면 거울 볼 겨를 없이 바쁜 경우는 있을 것이다.
 
과소비의 시대 아닌가. 이 때 이 노래 가사엔 모순도 눈에 띈다. 거울도 안보고 수수한 옷차림을 한 여인의 외양을 부각시키며 이런 여인이기에 외로울 거라는 추측성 상황의 연결 가사가 다소 어색하다. 그럼에도 이 노래를 듣노라면 지난날 앞만 보며 내달리던 젊은 날의 필자 모습이 문득 떠오른다. 하긴 그 때는 서른 중반까지 얼굴에 화장도 하지 않았었다. 선천적으로 유달리 흰 피부와 또렷한 이목구비를 갖추고 태어난 덕분에 별다른 화장술이 필요치 않았다.
지금은 어떤가. 젊은 날과 달리 노화로 얼굴도 몰라보리만치 변했음을 그 시절 사진들이 증명한다. 지난 젊은 시절 사진을 들여다볼수록 흐르는 세월이 참으로 야속하다. 이렇듯 한낱 유행가 한 곡조가 지난 청춘까지 소환해주니 그 힘이 대단하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