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여름이 덥더라도 예년 추석 무렵이면 아침 저녁 기온은 완연히 떨어지며 가을이 코밑까지 왔다고 알렸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추석이 내일인데도 낮 기온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열대야도 여전합니다. 더위 때문에 땀을 흘려가며 차례음식 준비를 하는데 마침 주문한 송편을 아들이 찾아옵니다.    올해 구순(九旬)이신 어머니가 그걸 보시고 “참, 살기 좋아졌다. 나(내가 며느리였을) 때는 새벽같이 일어나 성주단지에서 나락 퍼내어 방아 찧어 물에 불리고 가루 내어서야 떡을 만들어 쪘다. 찧어 논 쌀도 있는데 할맴은 어째 굳이 나락을 새로 찧어서 만들라 하시던지...... . 전도 부치고 나물도 볶고 그 와중에 두부도 끓여서 눌러놔야 하니 몸도 바쁘고 마음도 바빴제. 종가에 일손 부조하러 대소가 며느리들이 와서 여유부리며 어정거리는 걸 못 참아서 그러셨던가 싶다.” “할머니, 그때는 떡 만들어주는 떡집이 없었잖아요.” “그렇기는 하다만 그래도 나락 새로 찧어서 하라는 건 할맴이 부러 그러셨던 것 같아, 지금 생각하니.” “요새 이렇게 집에서 음식 준비하는 집도 드물어요, 주문하거나 사서 쓰지.” 조손(祖孫) 사이에 오고간 동문서답식 대화입니다.   전통적인 세시인 24절기는 농경사회에서의 캘린더 격입니다. 농사일은 노동집약성이 매우 큰 일로서 농사철 마을의 일가친척은 너나없이 일손을 합쳐야 했으니, 그런 삶의 방식이 자연히 내 집 네 집을 분별하기보다 공동체 안에서의 화합을 우선하게 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가문이라는 공통의 바운더리에서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무시되기 일쑤고 출생, 교육, 혼인, 죽음과 같은 일생의 중요사도 공통 관심사가 되어 공동체 구성원들 끼리 서로 염려하고 훈수를 두는 것이 자연스러웠을 테지요. 씨 뿌리고 모를 내며 함께 김을 매고 길러 가을걷이와 갈무리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공동체의 화합은 가장 중요한 요소였고, 풍조우순(風調雨順)하고 오풍십우(五風十雨)하여 농사가 잘 되면 이는 하늘과 조상의 음덕 덕분이니 새 곡식과 새 과일을 차려놓고 조상에게 감사를 드리고 서로의 노고를 위로하며 공동체의 화합을 다졌습니다.   언제부터인지 명절, 특히 설과 추석을 전후하여 대중매체에 흔히 오르내리는 말 중에 ‘명절증후군’이 있습니다. 명절과 관련해서 경험하게 되는 신체적, 심리적 고통을 두루 일컫는 말입니다. 그와 함께 ‘며느리 증후군’이라는 말도 자주 회자되었고요. 며느리증후군이 평소보다 월등히 늘어나는 가사노동과 시댁 식구들과의 관계, 고부갈등에서 오는 말이라면 젊은 세대의 명절증후군은 남보다 조금 더 가까운 관계 안에서 개인적 영역에 대한 과도한 관심과 훈수로 빚어지는 세대간 갈등에 더 초점이 맞춰지는 편입니다. 사회의 근간이 확연히 달라졌어도 아직 장유유서(長幼有序)의 윤리가 잔존하는 세대와 개인에게 큰 가치를 두는 MZ세대는 공통의 관심사도 공통의 도덕기준도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명절이 되면 집안의 눈에 잘 뜨이는 곳에 ‘취업이나 직장 여부 질문은 얼마, 결혼여부는 얼마, 자녀 출산 관련은 얼마’하는 식의 벌금 메뉴를 게시하자는 우스갯소리도 인터넷에 떠돕니다.   사회가 급변하니 과거의 윤리 기준을 제시하던 유교 전통은 어느 새 변질되고 약화되었습니다. 이태 전인가, 전남 진도 어느 노인회관 앞에 걸어 놓은 현수막의 문구가 재미있었습니다. ‘에미야∽ 어서 와라. 올해 설거지는 시아버지가 다 해주마!’라며 명절증후군을 완화하자는 의도가 명료한 문구에서 남녀유별, 장유유서, 삼종지도 등의 유교 전통은 매미가 벗어 놓은 굼벵이 허물처럼, 변해가는 사회에서 쓸모없는 유물로 간주되고 맙니다.   지금껏 지내던 추석 차례를 그만 접었다는 주변 지인들이 늘어납니다. 이미 인간의 노동력에 의존하던 농업도 기계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절대적이었던 자연의 힘도 과학과 기술로 보완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추수를 감사할 대상도 사라지고 축제로 화합할 마을공동체도 존재하지 않으니, 올해 추석처럼 긴 연휴가 되면 명절이 일에 지친 일상을 치유할 워라밸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모처럼 휴식시간이 같아진 가족끼리 짧은 여행을 가기도 하더군요. 물론 이 경우 가족은 조부모가 포함되지 않고 부모와 자녀만으로 구성된 핵가족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풍조에 내 시어머니처럼 혀를 차는 노인이 없지는 않지만, 이제 설이나 추석같은 명절의 의미가 전통적인 세시 절기의 의도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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