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쏘기 경기장 바로 옆에는 콕파르(Kokpar) 경기장이 있었는데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려와서 응원의 열기로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콕파르는 10여 명의 기마 선수단이 모형 양을 집어서 상대방 지역 원안에 집어 넣는 경기인데 말을 타고 채찍을 휘두르며 하는 경기는 거칠고 박진감 넘치는 정말 손에 땀을 쥐고 응원할 수 밖에 없는 경기였다.    우리는 활쏘기 경기를 마치고 인파 속에서 키르키즈스탄과 카자흐스탄 결승 경기를 보았는데 양을 가진 기마 선수를 상대방 기마 선수들이 에워싸거나 서로 엉켜서 격렬할 때 채찍으로 상대 기수를 때리는 반칙이 벌어지고 때로는 말이 넘어지거나 경기장 밖으로 도망을 가는 일로 해서 기마 심판이 경기를 멈추거나 시작하기를 반복하는 걸 보면서 정말 유목민의 진면목을 보는 짜릿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카자흐스탄이 승리했다.   러시아와 중국 선수들은 러시아 말이나 중국 말을 하지 않았다. 러시아 선수는 타타르인이 많은 것 같았고, 중국 선수는 신장에서 온 위구르인이었다.   중국 선수 중에 칭하이 출신도 있었다. 나와 같은 심판에 속한 선수는 4명이고 2명은 태국 선수였는데 태국말을 하지 않고 말레이말을 하는 이슬람인이었다. 그들은 말레이 반도의 국경에 산다고 했다. 1명은 루마니아 선수였는데 그는 첫날은 한 발도 명중하지 못했지만 다음날은 몇발을 맞추었다. 우리는 서로 응원하며 활을 내었다.   바로 옆 조에는 몽골 선수가 함께 했는데 그는 한국말을 조금하였고 대전에 사는 궁장 이름을 대며 잘 안다고 했고 예천과 몇몇 도시에서 개최된 국제대회에 참가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튀르키예 선수들도 와서 함께 사진을 찍었고 우즈벡 선수단도 만나서 함께 사진을 찍으며 서로 응원하였다.   아스타나의 원래 지명은 아크몰린스크로 소비에트 군대 주둔지 였다. 위도는 50도로 서울이 38도 부근이고 내가 사는 타슈켄트는 40도이니 온도 차이가 많이 날 수 밖에 없다.   1992년 소련에서 독립한 뒤 남쪽 국경선 천산 산록에 자리 잡은 알마티에서 이곳으로 이사하면서 자신들 조상들이 서울로 삼았던 아스타나를 지명으로 삼은 것이다. 우리가 머문 호텔이 투란 44번지였는데 투란은 바로 푸치니 오페라의 투란도트의 바로 그 투란인 것이다.   푸치니는 중국 북경을 배경으로 하였지만 술탄이 나오고 이슬람적 내용으로 보아서 중앙아시아가 더 적합한 배경으로 판단된다고 보아서 이들이 투란을 거리 이름으로 삼은 것 같다.   아스타나는 계획 도시로 도시 가운데 동서로 길게 큰 공간을 만들어 서쪽 이심강변에 대통령궁을 짓고 동쪽을 향하여 나아가면서 유목민의 상징물들을 배치해 두고 있다. 거리를 거닐며 한국인임을 확인한 사람들은 사진을 찍자고 요청하는 모습이 정말 카직인들을 우리의 이웃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목요일 저녁에 중앙아시아 최대 모스크에 지하에서 갈라 디너가 있어서 카자흐스탄을 제외한 참가국 대부분이 참석하여 우정을 나누었고 한복을 입은 우리는 무대에 나가 2025년 울산에서 개최될 세계민속궁대회 참가 홍보 이벤트로 문미숙 시조명창이 창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필자는 관광 비자로 우즈베키스탄에 입국했기 때문에 이 기회에 1년 비자를 받기로 대학과 약속하여 세 번이나 우즈벡 대사관으로 버스로 택시로 오가면서 받는데 성공했다.   대학 측에서 애를 많이 썼다. 마지막 날에는 우리 선수단을 안내했던 곱게 생긴 달의 공주라는 뜻을 가진 아이가 눔이 안내해주어 편했다. 고마운 마음에 남은 1만 텡게를 주려 하니 받지 않으려 했지만 그래도 주고 오니 마음이 편했다.   나는 비행기 시간 때문에 먼저 선수단과 헤어져서 타슈켄트로 돌아와서 추석 달을 보며 고향 친지에게 안부를 물은 다음 지금은 대학에서 강의에 열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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