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개명을 했다. 박미섬! ‘백퍼’ 마음에 드는 이름이다. 개명 후 찾아간 도장 가게에서 복 받은 이름으로 잘 바꿨다는 얘길 들었다. 요즘 말로 ‘기부니’가 좋았더랬다. 복 유무와 상관없이 맘대로 정했지만 같은 값이면 복 받는 이름이 좋으니까.   개명 전에 고민을 많이 했었다. 이름은 내 것이면서 부모가 물려준 것이란 생각 때문.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아 오히려 더 고민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느낀 바를 적어보려 한다. 개명하면 운명이 바뀔까. 바뀐다면 또는 안 바뀐다면 왜 그럴까. 박미섬이 된 나의 운명은 바뀌었을까.이름에도 운명이 담긴다?타고난 운명은 사주팔자에 담긴다고 한다. 이름에도 운명이 담긴다고 믿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름이 바뀌면 운명도 바뀐다고 여기는 이유다. 이 때문인지 매년 15만여 명이 법적 개명을 한다. 자식에게 이름을 주는 건 주로 부모다. 부모는 자기들 마음에 드는 이름을 직접 짓기도 하고 작명소 등에서 이름을 받아오기도 한다. 길운은 더하고 흉운은 덜어내기 위함이다.   새 이름은 본인이 짓기도 하지만 역시 작명소에서 짓는 경우가 많다. 나의 경우 내 마음에 드는 이름인지가 중요해서 직접 지었다. 이름으로 쓸 수 없는 불용한자 제외하고 그 뜻이 맘에 드는 한자를 즉흥적으로 골랐다. 불용한자는 이름으로 쓸 수 없는 한자란 뜻. 안 좋은 뜻이 담긴 犯(범할 범), 신체 일부를 가리키는 指(손가락 지)가 그 예.   내 이름이 아무렇지도 않았다면 개명할 이유도, 생각도 들지 않았을 터이다. 어릴 적부터 이름이 부끄러웠다.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사실도 부끄러워 안 부끄러운 척했다. 하지만 이름을 보거나 이름이 불릴 때마다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수치스러웠다. 못 들은 척, 내 이름 아닌 척했다.이름에 들러붙은 기억의 소환누구나 다 아는 유명인사와 같은 이름이었기 때문. 어릴 적에는 그저 유명했지만 커서는 뚜렷한 공과 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 인물. 이름 자체는 문제없었으나 '위대한 ***과 같은 이름이네' ‘몰라뵈었습니다 ***님’이라며 주목받거나 놀림 받는 게 싫었다.   생각해보면 이름 자체보단 이름과 연관된 수치스런 경험, 그 이름으로 불리던 과거 시간을 부정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개명 전 이름이 불릴 때면 이름에 들러붙은 기억이 소환되는 느낌이 들곤 했다. 그 느낌이 불쾌해 이름을 거부했던 것 같다. 과거 삶과 화해하지 못할수록, 감추고 싶은 경험이 많을수록 자기 이름에 거부감을 가진다고 한다.   그러다 처음 가입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닉네임을 쓰면서 개명하고픈 욕구가 생겨났다. 아니 욕구는 전부터 있었고 더 강해졌다는 게 맞겠다. 닉네임이 맘에 들었고 이것으로 이름을 새로 짓고 싶었다. 한자 뜻, 획수처럼 개명 시 중시되는 기준은 안중에 없었다. 마음에 드는 이름 앞에서 고민은 필요치 않았다.피해자 이름이 공개되지 않는 이유위는 나의 얘기이며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개명을 한다. 사회생활을 위한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예명, 호 같은 뜻깊은 글자를 쓰고 싶거나 더 복된 뜻을 담고 싶은 욕망도 있겠다. 이름 자체가 싫은 경우도 있다. 악인 즉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 이름과 같을 때도 마찬가지. 피해자 이름이 미디어에 공개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십수 년 전 성폭행 당해 세상을 떠난 피해 아동의 이름이 공개된 적이 있다. 그때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개명 신청한 사례가 많았다고 한다. 이름이 불릴 때마다 피해자가 떠오른다는 것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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