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경에 갑자기 한기(寒氣)가 들고 사지가 떨렸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참아 보았으나 떨림과 오한(惡寒)은 그치지 않았다. 내자는 증상이 예사롭지 않음을 판단하고 즉시 처남에게 전화하여 119를 불러 D대학의료원 응급실에 입원시켰다. 의료사태가 수습이 되지 않아 메스콤에 응급환자가 여러 병원을 뱅뱅 돌아야 한다는 말이 있었으나 이 대학병원은 그렇지가 않아서 퍽 다행스럽고 고마웠다.
  정밀 진단에 의해 폐렴으로 판명되었다. 폐렴은 폐가 바이러스, 세균, 곰팡이 등에 감염되어 염증이 발생하여 오한, 열, 가래, 기침, 호홉곤란, 두통 가슴 통증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질환이다. 항생제를 투입하며 치료가 시작되었다. 오후 5시에 7층 5인 병실에 옮겨졌다. 4명의 병인(病人)이 섭입(先入)되어 치료를 받고 있었으며 그중 2명은 부인이 간병을 하였으나 한 명은 전문간병인이 간병을 하고 있었다.
  이틀이 지나니 체온이 38도로 떨어지고 팔다리의 기능이 다소 회복되어 병상에서 간신히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그때마다 내자가 부축해 주어서 운신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울산에서 온 병인은 60대 중반인데 교통사고로 인하여 다리와 머리에 손상을 입어서 몹시 불편하였으나 부인이 간병을 잘하여 고통을 잘 참으면서 밝은 안색과 웃음으로 편안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86세의 남자 병인은 경주 내남 출신인데 포항시에서 온 간병인에 의해 간병을 받고 있었다.
  남편을 간병하는 각 부인들의 간병은 극진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지만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소지한 이 전문간병인이 간병하는 모습은 모두가 감탄하였다. 친정아버지를 간병하는 효녀처럼 24시간을 곁에서 시중을 들었다. 불편한 간병인 침대에 새우잠을 자면서 병인이 요구하면 즉시 일어나서 응해 주었다. 특히 친절한 말과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면서 병인이 심리적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해주고 있어서 소지한 자격증의 가치를 느끼게 하였다.
입원 5일이 되니 체온, 맥박, 혈압, 혈당 등의 수치가 정상화되어 완치가 된 듯하여서 마음이 편해졌다. 병원 복도에 비치된 『축산보림(鷲山寶林)』이란 월간지를 펼쳐 보았다. 이 책자는 세계문화유산 영축총림 통도사에서 금년 9월에 발행한 책자이다. 정본 스님이 쓴 ‘간병인과 아픈 사람’이란 제목이 눈에 들었다. 병인 유오사난간(病人 有五事 難看)이라 하여 아픈 사람에게 다섯 가지 일이 있으면 간병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첫째는 ‘소불응식 이욕식 불긍복약(所不應食 而欲食 不肯服藥) ’이라 즉 먹지 말아야 할 음식을 먹으려 하고 약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둘째는 ‘간병인 유지심 이불여실어(看病人有至心 而不如實語)’ 라 즉 간병하는 이가 지극한 마음으로 돌보나 간병인에게 있는 그대로 말하지 않는 것이다.
셋째는 ‘응행불행 응주부주(應行不行 應住不住)’라, 즉 반드시 해야 할 것에 대해서는 하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서는 하는 것이다.
넷째 ‘신유고통 불능감인(身有苦痛 不能堪忍)이라. 즉 몸에 고통이 찾아오면 참고 견디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다섯째 신소유감능 이부작 앙타작(身少有堪能 而不作仰他作)’ 이라. 즉 직접 할 수 있는 일이 있어도 하지 않고 남이 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공감이 가는 내용들이다. 몸이 아프니 병원의 식사가 나름대로 영양식이라고 하나 입맛이 없으니 먹기 싫고, 영약(靈藥)은 고어구(苦於口)라 했으니 먹기 싫은 것은 당연하지 않는 가. 병인은 만사가 귀찮아서 간병인에게 말하기가 싫으니 사실을 표하기 어려운 것이고, 마치 어린애처럼 부모 의존적 태도를 취하다 보니 능동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간병인의 어려움을 병인은 잘 알아서 능할 수 있어야 빠른 쾌차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전문간병인의 간병도 좋지만, 내자(內子)의 극진한 간병은 병인에게는 행복한 서비스였음을 새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