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불안은 안보다. ‘Seoul ADEX’ 전시 무기를 ‘방산관’에 옮겨 세계 5위의 한국군의 실력을 보여야 국민은 국방을 안심한다. 미국 CNN은 한국의 방위산업을 ‘메이저 리거’라 했다. 국제명품이 된 한국 무기를 실물과 영상으로 성능을 알면 우리 국민은 물론 외국 여행객도 흥미있는 볼거리가 되겠다. 탄도 중량 8t의 첨단무기 ‘현무5’ 미사일이 100m 지하까지 파괴하는 위력을 보면 북한의 핵사용 시도는 저들의 정권 소멸이 먼저라는 사실을 안다. 국제적 관심이 된 K-2전차, K-9자주포. 각종 미사일과 세 계최고의 성능 AESA 레이다의 독자 개발이 얼마나 험난했는지 국민들은 모른다. 무기의 재료가 없어 베트남 전장에 버려진 탄피까지 모아야 했던 과거다. 1971년에 주한미군 2만 명이 철수하자 정부는 1973년부터 자주 국방을 목표로 본격적인 중화학공업을 육성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한국의 첨단 신무기는 비로소 50년 만에 빛을 보게 된다. 노태우 정권의 북방 정책은 하늘이 도운 신의 한 수였다. 소련에 공여한 차관을 러시아에서 받게 되자 ‘불곰 사업’을 시작한다. 텡크, 장갑차, 헬리콥터, 경비행기, 공기 부양정, 대전차 미사일 등을 상환금 대신으로 받아 무기 개발 현대화의 샘풀로 삼았다. 그때 한국은 오리온 초코파이, 팔도 도시락, 각종 라면을 들고 러시아 교역의 문을 열었다.해군의 첫 이지스함 세종대왕함과 장보고 잠수함, 최고 속력 111Km의 초고속정 등 세계 최고의 함을 만들기까지 외국 동포들이 보여준 숨은 애국을 잊을 수 없다. 미 해군의 로버트 킴이 정보유출 혐의로 체포되어 9년 징역형을 받자 김승연 한화 회장은 “조국 사랑에 대한 빚”이라며 출소 때까지 그의 가족을 도왔다. KF-21 개발에 헌신한 재미동포 박시몽 박사의 애국도 마찬가지다. 미 공군의 ‘F-22랩트’는 누구도 범접 못할 세계 최강 비밀병기다. F-22의 항전비행 제어를 담당했던 그의 경험이 쌍발엔진 KF-21을 개발하는데 결정적 동력이 됐다. 그는 스스로 미국 법정에 기소를 자청하여 기술유출을 인정하고 21개월의 옥살이를 끝냈다. 세계 명품으로 등극한 'K-9 자주포‘의 개발책임자 김동수 박사는 밤낮 없는 과로로 55세 나이에 순직했다. 모두 명품무기 개발에 남겨진 숨은 얘기다. 한국 방위산업은 포스코를 빼고는 거론할 수 없다. 더구나 무기 개발이 그렇다. 'K-9자주포‘도 포스코의 Armor Plate(방탄강, 장갑판)로 이룬 쾌거다. 외국 동포들의 조국애는 포항제철에서 시작됐다. 1968년 포스코 건설 중심에는 재일동포 김철우 박사가 있다. 그는 첫 한국 방문에서 박태준 대한중석 사장을 만난 것이 인연이 되어 도쿄공대 연구교수 자리를 버리고 포항제철 건설에 참여한다. 제1고로(용광로) 설계와 기술 책임을 맡고 모든 공정을 이끌던 중, 1973년 공장 준공을 한 달 앞두고 갑자기 간첩혐의로 체포된다. 북송된 형제를 만나러 북한에 간 것이 문제가 되어 7년 옥살이를 한다. 그러고도 철에 미친 사나이는 다시 돌아와 부사장 직을 맡고 박태준 회장과 쌍두마차가 되어 한국제철산업에 일생을 바쳤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