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모로하시 데쓰지(諸橋轍次‧1883~1982)는 도쿄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1919년 문부성의 중국철학‧문학 연구생으로 선발되어 중국에서 청조(淸朝) 때의 교감학(校勘學‧고서적 등의 본문의 같고 틀림을 비교 연구하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학업 중 연구를 도와줄 제대로 된 사서류(辭書類‧사전)가 없어서 많은 애를 먹었다. 귀국 후에는 스스로 사전 편찬에 착수하였다. 『대한화사전(大漢和辭典)』은 본문 12책, 색인 1책, 어휘색인 1책, 합 14책을 여러 해로 나누어 연차적으로 다이슈간서점(大修館書店)에서 간행하였다. 그리고 1968년에는 보충편 1책을 추가하여 전 15책으로 세계에서 가장 방대하고 정확한 한자사전으로 50,354자가 수록되어 있다.   이 무렵에 중국 최고의 한학 권위자가 일본에 들려 모로하시의 『대한화사전』을 보고 돌아서서 눈물을 훔쳤다는 일화가 있다. 이 눈물은 학문의 연구 성과에 대한 격려의 마음에서 울어 나온 기쁨의 눈물이나 감격의 눈물이 아니라, 학문 영역에서 연구 경쟁의 뒤처짐이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함의 눈물로 한문자(漢文字)의 종주국으로 으스대던 그들로서는 자존심이 무척이나 상하겠지.    그렇지만 학문계 발전을 위한 칭찬의 감루(感淚)가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 감성에 치우친 패자의 분루(憤淚)로, 사계(斯界)의 전문가로서는 좀 더 대륙 기질에 대인(大人) 다운 선비의 의연함을 보여주지 못하고 왜소하고 좁쌀스런 도량 좁은 소인으로 투영(投影)되었다. 아쉬운 마음에서 거듭 말해 고진감래 끝에 이룩한 학문 세계의 대역사(役事)를 진정에서 울어 나온 축하의 감격적 눈물이었다면 지성세계에서 얼마나 아름다운 찬사의 봇물이 터졌겠는가. 상생(相生)의 염(念)이라는 눈곱만큼도 안 보이는 심지(心志) 좁은 쇠하고 고루한 노인으로만 비친다. 좀 더 격려의 찬사와 성취의 격찬이 필요한 데, 너무나 칭찬에 인색한 타성에 젖어 외통수에 함몰되어 있다. 두 나라가 같은 한문학 분야의 연구에 치중하다 보니 거기서 얻어진 값진 성과물을 각기 참고자료로 활용하면 더욱 발전에 이바지하게 된다. 학문은 미래 지향적 연구 발전의 대상이지 시기(마음)와 극복의 대상은 결코 될 수 없다. 사실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고 했던가. 지음(知音)의 백아절현(伯牙絶絃)의 고사와는 너무나 함량 부족으로 지성의 오만함이 엿보인다. 한문학의 진수인 예의염치와 지식인의 상징인 겸손은 통째로 실종되어 민망하고 기가 막히지만 이것이 현실인데 야 어쩌랴.   이쯤하고 그 중국학자의 말이 『강희자전(康熙字典)』은 1716년 강희제(帝)의 명령으로 30명의 전문 학자가 참여하여 이룬 명찬(命撰)으로 12집으로 나누어 4만 2천 여자를 수록하였다. 200여 년간 세계 제1의 자전으로 존재감을 자랑하다 『대한화사전』의 출현으로 『강희자전』의 명성은 소멸되었다. 한자문화권의 중화(中華)에서 문자의 산모국이 한문 경쟁에서 일본에 뒤진 것이 전체를 잃은 것과 같아 못내 아쉽다며 심회를 밝혔다. 단국대 명예총장 장충식(1932~ )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한자와 단어가 수록된 『한한대사전(漢韓大辭典)』을 310억 원의 예산으로 30년 만에 박문출판사에서 완간하였다. 내용은 총 16책에 5만5천여 자, 45만여 단어가 수록되어 있다.   편찬자의 소회는 한국과 같은 한자문화권은 대부분의 학술 자료가 한자어로 되어 있어 이를 극복하자면 권위 있는 사서류가 절대 필요하다. 세계 각국 여러 학자들의 많은 활용으로 학문의 진전을 바란다. 그리고 우리에게 한문자의 사전은 우리말 사전 못지않게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각국에서 간행한 사전과 비교 우위를 점해야만 했다. 대만의 『중문대사전』(5만 여자, 40만 단어), 『일본의 대한화사전』 5만 354자, 39만 단어), 중국 『한어대사전』 (5만 6천 여자, 37만 단어) 등이 있으나 이정도 수준이면 한국의 『한한대사전』이 현재로서는 세계 제 1의 한자사전의 자리를 지킬 수 있다.   백제의 왕인 박사가 일본에 한학을 전수했는데, 한문학의 역수입이란 민족 감정에 거부 반응을 일으켜, 30년의 집념 끝에 일본, 중국에도 이루지 못한 세계 최대 한자 사전의 탄생으로 한국은 물론 세계인의 눈길을 끌었다. 문명세계의 문자사전의 편찬은 전통을 보존하는 정체성의 수호이며, 나라의 언어를 찾는 탐구의 사업이고, 국사를 세우는 창조의 주역이다. 영광의 흔적은 영원히 기록으로 남는다. 그리고 지성을 울린 집념의 흔적도 인간이 지구상에 문자 동물로 남아 있는 한 시간을 초월한 불멸의 존재로 부조(浮彫)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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