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교향악단 시립화로 안정된 상황에서 경주의 고분이나 왕릉, 국립경주박물관 등에서 수시로 수준 높은 클래식 음악회를 선보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경주교향악단 제35회 정기연주회를 끝내고 만난 이동호 상임지휘자의 말이다.
경주의 자랑스런 음악인이자 경주교향악단에 남다른 애정을 가졌던 지휘자 안종배(1932~2024) 교수를 기리는 추모음악회가 경주예술의전당 소공연장에서 열렸다. 경주교향악단(단장 신현국)의 제35회 정기연주회였다. 이번 정기연주회는 2000년부터 경주교향악단 상임지휘자 및 음악 감독을 맡은 안종배 교수가 지역사회 클래식 음악의 대부로 크게 기여한 삶의 궤적과 경주교향악단의 시립화를 염원했던 바람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는 특별한 음악회로, 안 교수를 기리는 서정적이고 애조 띤 곡들로 구성해 추모의 서정과 감동을 선사했다. 그러나 연주 내내 몇 가지 불편한 진실과 맞닥뜨려야 했다. 관객 대부분은 초청한 고등학생들이 많았고 순수하게 연주회장을 찾은 이는 절반 정도였다. 그나마 만석은 아니었지만 단원들이 헛헛해하지는 않을 만큼은 채워졌다. 또 실제 교향악단의 연주에 감동한 것보다 훨씬 많은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열악한 환경에서 연주하는 그들의 노고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 싶었던 이유였다. 모두 25~6명의 단원들 중 관악과 타악기 연주자 7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여성 단원들이었다는점도 그리 달갑지 않게 다가왔다. 또 명색이 교향악단 연주인데 대공연장이 아니라 소공연장에서 연주된다는 것도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30여 명 단원들이 연주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공간이라 옹색한 모양새를 피할 수 없었다. 이 모든 불편함은 겨우 명맥만 이어가는 듯한 경주교향악단의 현재 지표인 것 같아, 이웃 포항시의 예가 자연스럽게 부러워졌다. 포항시는 1990년 포항관현악단과 포항교향악단을 통합해 창단해 클래식음악의 보급과 지역문화발전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오는 8일까지 열리는 ‘2024포항국제음악제’에서도 국내 정상급 연주자들과의 협연에 중추적 역할을 하며 음악적 갈증을 해소하고 미래의 청중확보에도 힘쓰고 있는 모양새다. 경주시도 국제음악축제를 여러 차례 열었었다. 그러나 경북도립교향악단 등이 협연했던 기억이 난다. 현재 경주시립예술단에는 경주시립극단과 경주시립합창단, 신라고취대가 있으나 시립교향악단은 아직 창단되지 못했다. 이는 ‘국제도시 경주’라는 볼륨에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창단을 서둘러야 하는 또 하나의 명분이 된다. 1986년 창단된 경주교향악단은 그동안 정기연주회, 특별연주회, 신라문화제 경축음악회 등을 열어왔다. 2002년 한 차례 시립으로의 창단 열기가 있었으나 무산됐다. 경주시 재정 형편이 늘 이유였고 시립교향악단의 유지가 어렵다는 것이 무산의 결정적 이유였다. 그리고 교향악단을 운영하고 있는 인근 도시의 예산 편성과 운영 방안 등에 대한 충분한 연구 검토도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단지 재정적인 문제로 시립화를 보류하는 것은 시립교향악단 창단의 중요한 사안에는 비할 수 없다. 여기서 안종배 선생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자면, 선생은 대구시와 마산시 시립교향악단을 창단하는 등 두 도시의 교향악단을 만든 음악인으로서 문화도시를 표방하는 경주시에 교향악단이 없다는 것을 늘 안타까워했다. 선생은 평소 “포항, 대구, 김천시도 시립교향악단이 있는데 경주가 없다는 것은 문화도시로서 문화적 품격에 심각한 결격사유가 된다고 생각한다”고 개탄했다. 사실 경주교향악단이 명맥을 유지하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구심점 역할을 해온 이들은 안종배 선생 외에도 많다. 신현국 단장을 비롯, 지휘자 이동호, 음악감독 김상용, 악장 김형선, 열정으로 함께 해온 단원 등이 바로 그들이다. 시립교향악단의 창단은 역사문화관광도시로의 경주 위상에 걸맞게 경주의 문화를 한 계단 업그레이드하는 효과를 줄 것이 분명하다. 지역에서는 경주시립교향악단 창단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전통적인 음악장르로서 고도의 예술성과 수준 높은 기량이 요구되는 경주시립교향악단의 창단은 지역의 문화 수준을 높이고 음악 예술에 대한 관심도 증가할 것이라는 여론이 여전하다. 경주시는 연간 3600여 만 명의 국내외 관광객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중요 인사들이 수시로 방문하는 도시다. 그들이 경주를 방문하는 것은 역사와 문화가 살아있는 경주의 모습을 보러 오는 것이고, 경주시민들의 문화적 소양을 보고 느끼고 갈 것이다. 시의회와 경주시는 시민들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지역 음악인을 양성하는 차원에서라도 국제 교류가 많은 경주에 운영 조례 제정 등 제반 준비 작업을 거쳐 시립교향악단의 창단을 신중하게 다시 검토해야 한다.2025 경주APEC을 찾는 수많은 방문객들에게 경주시립교향악단의 연주회를 당장 들려주기는 어렵겠지만 포스트 APEC에서라도 경주를 찾는 방문객과 경주시민들에게 ‘우리’의 시립교향악단이 차려준 풍성한 영혼의 식탁에서 클래식 음악으로 포만할 날을 기대해본다. 그날, 경주문화의 새 장도 함께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