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성이 인도(人道)를 걸어가고 있다. 그 때 그 여성의 뒤를 걷고 있던 한 남성이 갑자기 그 여성을 덮쳐 인도 옆으로 쓰러뜨리며 남성의 몸이 여성의 몸 위로 포개진다. 그러니까 이 장면은 누가 보아도 한 남성의 여성에 대한 폭행 장면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건의 전말은, 그 여성이 걷고 있던 인도 옆 고층빌딩 옥상에서 떨어지고 있는 대단히 큰 낙하물을 발견한 남성이 위험을 무릅쓰고 몸을 날려, 앞에 가고 있던 여성의 생명을 구한 의로운 사건이었다는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남성을 지독하게 미워하는 어떤 자가 이 남성을 여성폭행죄로 기소한 바, 법정에 증거로 제출된 CCTV 녹화 영상에는 낙하물이 떨어지는 장면이 삭제된 채, 오직 남성이 여성을 덮치는 장면만 보여 진다면 어떻게 될까?당연히 판사는 피고에게 유죄를 선고할 수밖에 없을 것인데, 이 경우 의인(義人)을 흉악범죄자로 만들기 위해 증거를 조작한 기소자의 천인공노할 죄상이야 말 할 것도 없지만, 제출된 증거의 진위 여부를 의심하지 못한 판사 역시 직무상의 과실죄를 면하기는 어려워 보이는데, 과연 지금까지 검사의 기소(起訴) 오류나 판사의 오판(誤判)에 대해 그 책임을 물어 처벌한 사례가 있는지가 궁금해진다. 고속도로를 주행하는 운전자는 누구나 속도위반을 하여 범칙금이라는 처벌을 받을 수 있는 개연성이 있는데, 조수석에 앉아 있던 사람에게까지 교통위반 방조죄나 교사죄를 적용한 적이 있었는가? 아무튼 전혀 악의(惡意)가 없는 업무상 과실죄에 해당하는 교통사고도 그 피해의 경중에 따라 형사처벌이 따르기 마련인데, 만일 우리 사회의 질서 유지에 가장 중차대한 사법 집행자에게 업무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면, 우리는 왜 이런 불공정하고 불합리한 사법체계를 계속 유지해야 할 것인가? 라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우리는 우리 사회의 공무원들에게 신(神)의 권능을 부여한 바 없으며, 단지 공동체 유지에 필요한 기능의 일부 권한을 위임해두고 있을 뿐이라 생각하는데, 백만 명이 부정해도 단 한 사람의 판단으로 그 결과를 뒤집을 수 있다면, 민주주의란 결코 집단지성 체제가 아니라 신의 지위를 가진 특정인의 의지 하에 맡겨진 운명체일 뿐이라 해야 옳지 않을까?공동체 구성원들의 합의로 만들어진 헌법이, 그 공동체 구성원의 한 사람일 뿐인 일개인이 판단의 전권을 행사한다는 것은, 우리가 사회체제를 만든 이후 가장 큰 제도적 모순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어떤 이가 가장 좋아하는 듯한 자유민주주의의 종주국에서는 헌재(憲裁)를 따로 두지 않았으며, 형사법정에서조차도 재판장은 재판의 진행자일 뿐, 유무죄의 판단은 무작위로 차출된 일반 시민으로 구성된 배심원 들이 결정하도록 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 누가 이런 불합리해 보이는 사법 체계를 고착시켰을까?386이나 486컴퓨터 시대의 하드웨어에 적합하던 운영체계인 DOS나 Win3.0을 펜티엄 컴퓨터에 그대로 쓰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아니 펜티엄조차도 이제 곧 추억 속의 하드웨어가 될 전망이며, 양자컴퓨터와 AI가 만들어낼 인류 문명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지금, 아직도 스스로 신탁(神託)임을 외치는 자들과 신의 권위를 고수하고 싶은 가장 무지하고 무능해 보이는 자들이 지배하는 사회를 이대로 허용해야 할 것인가를 독자 여러분들에게 묻고 싶어진다.범죄인이 아닌 사람을 범죄자로 오인했다면 업무상 과실이 되겠지만, 범죄자가 아님을 알면서도 기소했다면 원인무효(原因無效)임으로 그 어떤 판결도 효력을 가질 수 없다는 게 지금 나의 개인적인 법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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