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맞춤법이 문제 되는 두 가지 경우, 논리적인 글에서 많이 헷갈리고 틀리기 쉬운 사례인 '지양 / 지향'을 소개했다. 지양의 일반적인 의미도 알아보았다. 오늘은 지양의 철학적 의미, 지향의 일반적 의미와 철학적 의미를 정리해보려 한다.
  지양은 높이다, 보존하다, 부정하다 등 주로 부정한다는 철학적 의미로도 사용된다. 이 경우 영어보단 독일어 표현인 Aufheben이 많이 쓰인다. 지양이 애초에 독일 철학자 헤겔(G. W. F. Hegel)의 변증법에서 사용된 용어이기 때문. 헤겔은 보존과 부정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하는 용어로 보았다.
변증법적 발전 과정에서 낡은 질이 부정되고 새로운 것으로 바뀌게 된다. 이때 낡은 질(質)에 있던 것들이 부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의 적극적인 것이 새로운 질 안에 보존된다. 지양은 낡은 것이 부정되고 새로운 것이 드러날 때, 낡은 것 일부가 새로운 단계에 보관되는 상태를 가리킨다.
즉 부정과 보존이 공존하는 상태로 볼 수 있다. Aufheven의 이러한 의미는 이후 마르크스주의 창시자들인 마르크스(K. H. Marx), 엥겔스(F. Engels)의 유물론적 변증법에도 적용되었다.부정과 보존이 공존하는 상태예시: “ㄱ. 우리의 생활세계는 부정을 경험하며 보편적 사회성으로 지양된다.” “ㄴ. 헤겔은 욕구를 세 가지로 구분했다.” “첫 번째 욕구는 분열을 지양하고 동일성을 보존하려는 욕구다.” 예시에서 볼 수 있듯 '생활세계', '분열'은 그저 부정되어 사라지는 게 아니다. 부정되면서 동시에 '보편적 사회성', '동일성' 속에 보존된다. 지양이 복합적인 함의를 가진 단어임을 알 수 있다.
참고로, 변증법(辨證法, dialectic)은 일반적으로 헤겔이 말하는 의미로 제시되고 있다. 헤겔은 19세기 초 칸트 철학을 계승한 독일 관념론 철학자. 그는 인식·사물이 정(正) - 반(反) - 합(合) 세 단계로 전개된다고 주장했다.
 
정은 자신 안에 모순이 포함되어 있지만 알지 못하는 단계. 반은 모순이 자각되어 바깥으로 나타나는 단계다. 합은 정과 반이 통일되는 단계를 가리킨다. 이 세 단계를 통해 변증법은 사물의 운동을 모순이나 대립의 원리로 보는 논리로 요약할 수 있다.‘평화’ ‘복지 국가’ ‘낙관주의’가 앞에?지향(志向)은 향하다, 목표하다가 유의어. 한자는 志向으로, 영어는 pursue, seek로 표현한다. 역시 두 가지 차원의 의미로 쓰인다. 첫째 일반적 의미. 어떤 목표로 뜻이 향해간다는 뜻. 태도, 신념, 주의, 정책 등이 특정 방향으로 나아갈 때 사용된다. 따라서 지향 앞에는 긍정적으로 인식되는 단어가 붙는다.
  예시: “ㄱ. 전쟁이 아닌 평화를 지향한다.” “ㄴ. 복지 국가를 지향하는 정부의 노력은 높이 살 만하다.” “ㄷ. 어렸을 적 학대를 당했음에도 낙관주의를 지향한다.” “ㄹ. 현대 들어 다양한 성적 지향(sexual orientation)이 나타나고 있다.” “ㅁ. 객체 지향(object-oriented)은 실제 세계를 모델링 해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방식이다.”
평화, 복지 국가, 낙관주의 같은 긍정적인 의미 단어들을 볼 수 있다. 참고로 객체 지향은 객체 지향 프로그램(모든 데이터를 오브젝트(object)로 취급해 프로그래밍하는 방법)이라는 기술 용어로 활용되고 있다.후설 현상학의 핵심 개념둘째 철학적 의미. 의식과 대상의 관계를 나타내는 철학 용어로도 쓰인다. 지향성(志向性, intentionality)이라는 개념 형태로 많이 사용된다. 지향성은 특히 독일 철학자 후설이 제시한 현상학 이론의 핵심 개념으로 알려져 있다.
예시: “ㄱ. 실천 철학과 이론 철학은 지향성을 조금 다른 개념으로 정립했다.” “ㄴ. 독일 현상학자 후설(E. Husserl)은 내적 의식이 대상과 맺는 관계를 지향성이라고 불렀다.”
지양 지향의 차이점을 정리해본다. 두 단어는 일반적 의미에서 정반대 뜻을 보여준다. 지양은 더 높은 단계를 위해 어떤 것을 하지 않는 것을, 지향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을 뜻한다. 철학적 의미의 경우 지양은 부정하는 동시에 보존하는 행위를, 지향은 의식이 대상을 향하는 행위를 나타낸다. 지양과 지향은 이처럼 어떻게 보면 정반대 함의로 사용됨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