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엔 편지를 쓰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고은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가요로 가을이 되면 문득 생각나는 노래입니다. 이동원이란 가수가 불러서 TV나 라디오를 통해 많이 알려지고 퍼져서 가을이면 한번쯤은 들어봤음직하지요? ‘가을’이란 말을 들으면 통속적으로 ‘추수, 결실’이나 ‘외로움, 쓸쓸하다’ 같은 낱말을 떠올립니다. 노랗고 붉게 물든 잎들은 땅에 깔리고 잎을 모두 떨어낸 맨몸의 앙상한 나무를 보면 자연스럽게 ‘외로움’이 연상됩니다. 가을은 풍요와 외로움의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인가 봅니다.   ‘외로움’의 유의어(類義語)로 ‘고독’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두 낱말은 공통적으로 ‘쓸쓸한 마음이나 느낌’이란 의미를 담고 있지만 엄밀히 보면 외로움과 고독의 뉘앙스는 조금 다릅니다. ‘고독’이 주체적이며 긍정적 느낌을 준다면 ‘외로움’은 수동적, 부정적 뉘앙스를 풍깁니다.    폴란드의 신학자 폴 틸리히는 ‘혼자 있는 고통을 표현하는 말은 외로움이고, 혼자 있는 즐거움을 표현하는 말은 고독’이라고 정의 했습니다. 「월든」의 저자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물욕과 인습의 사회와 인연을 끊고 월든 숲속에서 홀로 생활하면서 자연과 인생을 직시한 고독에 외로움의 의미는 담기지 않습니다. 즉 외로움이 타인과 연결되지 못하고 세상에 나 홀로 떨어져 있다고 인식하는 정서라면, 고독은 자발적인 격리로 타인이 아닌 자신에게 집중하여 내면의 목소리를 듣게 되는 과정을 일컫는다고 할까요? 그렇게 보면 오늘날 현대인이 느끼는 소외는 고독이 아니라 외로움의 정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영국의 정치경제학자인 노리나 허츠는 저서 「고립의 시대」에서 21세기를 사회적으로 고립감을 느끼는 외로운 사람들이 대규모로 쏟아져 나오는 ‘외로운 세기’라고 말합니다. 외로운 사람들이라 하면 고독사, 독거노인 등 노인세대를 먼저 떠올리겠지만 실제 통계적으로 가장 외로운 세대는 20대라고 합니다. 가장 활기차고 생기 넘쳐야 할 20대가 가장 외로운 세대라는 것은 참 모순적입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20대 젊은이의 많은 수는 자신이 어렵고 힘들 때 처지를 호소하거나 도움을 줄 사람이 주변에 없다고 생각한답니다. 이는 서울시가 내놓은 2022년 ‘서울시 고립 은둔 청년 실태 보고서’에 나타난 내용입니다.   한나 아렌트는 외로움이란 감정을 ‘모두에게 버려졌다는 감정 상태’라고 말합니다. 전통사회에서는 개인의 자의식은 가족, 가문이라는 집단에 묻혀서 표면에 드러낼 수 없는 정서였지만 반대로 집단에 속한 개인이 어려움에 처할 때 가족 집단은 그 어려움을 공유하고 함께 해결하려 했습니다. 그에 비해 오늘날 젊은이들은 성인이 되면서 학교, 직장을 따라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독립된 개체로 생활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그 경우 스스로 독립적인 성인이라 여기지만 어려움에 처할 때 조언을 구하거나 도움을 부탁할 사람이 없는 정서적 고립이 외로움을 불러옵니다.   전통 사회의 우물가, 빨래터, 마을 사랑방에서 얼굴을 맞대고 주고받는 대화는 말만이 아니라 서로의 표정, 몸짓과 같은 비언어적 표현이 동반되어 풍부한 공감으로 대화자들을 인도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과거 어느 시대보다 발달한 소통 수단을 가졌습니다. 손 안에 든 스마트폰 하나로 세상의 구석구석을 들여다보고 지구 반대편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소식을 주고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공간에서의 대면 접촉이 차단된 디지털을 매개로 한 만남은 보여주고 싶은 것을 일방적으로 전달하지만 상대방의 정서나 처지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습니다. 젊은이들이 주고받는 카톡 대화창은 단답형 문장이나 극히 경제적으로 줄인 메마른 언어 기호들이 난분분하여 같은 세대가 아니면 내용을 해독하기조차 어렵습니다. 디지털 시대의 각자는 디지털 고치 속에 들어앉아 ‘각자도생(各自圖生)’을 모토로 살아갑니다.   젊은 세대가 이렇게 된 데 교육시스템과 사회의 책임이 없다 하지 못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앞질러 제일 앞자리에 서도록 경쟁을 부추긴 학교에서나 능력 제일주의의 사회에서 타인은 모두 나의 경쟁 대상일 뿐, 나란히 함께 갈 동행이 될 수 없습니다. 이런 사회에서 외로움은 필연적으로 가 닿게 되는 최종 행선지입니다. 외로움은 개인에서 그치지 않고 사회적 상태로 퍼져 갑니다. 외로움이 분노어린 슬픔으로 변질되어 까닭도 없는 ‘묻지마 범죄’로 이어집니다. 정치인들은 외로움이라는 불안에 휩싸인 사람들을 동원하여 포퓰리즘 정치에 이용합니다.   젊은 세대가 가장 외로운 세대가 된 것은 사회 전체의 책임입니다. 그러니 사회가 젊은이들의 어려움에 귀 기울이고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정책을 모색해야 합니다. 단순히 물질적 정책만이 아니라 젊은이들의 정서적 불안정도 보살피고 다독일 수 있는 ‘사회적 돌봄’이 절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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