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딸의 아니무스에 영향을 준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내 안엔 늘 아버지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호탕하고 자상하며 풍류를 즐기던 아버지, 그러나 그런 아버지의 긍정적 그림자 이면엔 또 다른 아버지의 모습이 자리하기도 한다. 아버지는 젊은 날, 숱한 여성 편력으로 어머니의 마음을 상당히 아프게 했다.
아버지는 함흥 청진 고향 땅을 1.4후퇴 때 홀로 남하하여 고학으로 최고학부를 마친 후 경찰에 몸담았다. 훗날 어머니랑 결혼 하여 가정을 이뤘지만 아버진 북에 두고 온 부모형제를 늘 잊지 못한 채 그리움에 눈물을 흘리곤 했었다. 그때마다 아버진 우리들에게 “내 생전에 단 한번만이라도 북에 두고 온 부모님과 형제들의 생사 여부라도 알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아버진 끝내 이산의 통한을 안은 채 세상을 뜨고 말았다.
 
십 수 년 전일이었던가. 기억조차 가물거린다. 북한이 다시 이산가족의 상봉을 재개한다는 뉴스를 접하고, 지난날 친정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린 적 있다. 6・25 발발 후 동족의 가슴에 서로 총부리를 겨눈 지가 반세기가 넘는다. 엄밀히 말하면 나의 뿌리는 북한 함흥 청진이다. 이산가족 제2세인 나로선 북한의 이산가족 재개 소식이 왠지 반가웠다. 비록 나의 아버진 생전에 북에 두고 온 당신의 핏줄을 만나진 못했지만 여건이 허락된다면 아직도 생사를 모르는 아버지의 혈육들을 만나고 싶은 심정 간절하다.
  생전 북에 두고 온 부모 형제를 그리워하며, 아버지가 즐겨 부르던 애창곡을 이 딸이 아버지를 대신하여 불러본다. 아무래도 눈물이 나올 것 같다. ‘누가 이 여인을 모르시나요’가 그것이다.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얌전한 몸매의 빛나는 눈/ 고운 마음씨는 달덩이 같이/ 이 세상 끝까지 가겠노라고/ 나하고 강가에서 맹세를 하던/ 이 여인을 누가 모르시나요/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부드러운 정열의 화사한 입/ 한번 마음 주면 변함이 없어/ 꿈 따라 임 따라 가겠노라고/ 내 품에 안기어서 맹세를 하던/ 이 여인을 누가 모르시나요
애조 띤 음색도 음색이려니와 가사는 한편의 아름다운 시다. 그러기에 가슴이 더 저려온다. 지난날 텔레비전에서 이산가족이 상봉하는 장면을 마주할 때마다 배경음악으로 깔리던 이 통한의 노래. 이 노래를 들을 때면 나는 고인인 아버지의 향수병을 대물림 받은 듯이 가슴에 안고,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북녘 땅의 친척들을 상상으로 만나보곤 했다. 원수의 38선이다. 이제 그 생명을 끊을 만도 한데 아직도 우리 앞에 놓인 그것의 생명은 야속하리만치 소심줄처럼 질기기만 하다.
전쟁처럼 인간사에 참혹한 일이 있을까. 귀중한 재산을 잃고, 자유를 잃고, 꿈과 희망을 잃게 만드는 게 전쟁이 아니던가.
이별의 아픔은 이별을 경험해 보지 않은 자는 모른단다. 그것도 생이별. 아버지께서는 당신이 고인이 되는 그 순간까지도 고향의 부모님이 건강히 생존해 계실 거라는 기대를 접지 않았을 것이다. 이산가족의 상봉은 민족끼리의 화합이고, 평화의 약속이었는데 그마저 중단한 지 오래다.
‘누가 이 여인을 모르시나요’ 요즘엔 이 노래가 환청으로 자주 들린다. 나도 아버지처럼 향수병 환자가 되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