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게 뭐야? 잔뜩 여민 외투 깃을 풀고 보니 물오리 대여섯 마리가 헤엄을 치고 있다. 얼음판에서도 맨발로 돌아다닌다. 세상에나, 우리 어릴 때처럼 썰매를 타고 아주 신이 났다. 며칠 전에 내린 눈이 아직도 설국에 온 것 같다. 눈이 쌓일 때마다 산자락 눈이 은하수처럼 빛나곤 했었지. 감나무에도 소복소복, 장독이며 지붕을 하얗게 덮은 백설의 원시림도 꿈결 같은데 늠름한 물오리를 보게 될 줄이야...     짐작은 했다. 한겨울 물가에서 얼음지치기라면 녀석들 외에는 없을 테니까. 얼마나 추운 날씨였던가. 외투를 입고 목도리에 장갑까지 끼고 나섰다. 금방 손이 얼어붙었다. 발이 시리고 귀 끝이 아렸다. 잔뜩 무장을 하면서도 냇가에 가면 물오리에게 괜히 부끄러웠다. “우릴 보고도 춥다는 소리가 나와? 봐, 봐! 물속에 들어가 있잖아?”라고 웃어젖힐 것 같다.  추울 때마다 빛나는 겨울 소나타가 떠오른다. 허여멀끔 새들보다 겨울 벌판 휘젓는 물오리가 더 끌린다. 핸섬은커녕 까무잡잡한 얼굴이다. 지금은 함박눈 때문에 돌섬도 같고 수많은 조약돌이 모여 있는 듯 그림 같은 풍경이지만 평소에는 갈대밭에서 잘 띄지도 않는다. 초겨울에도 “거무튀튀한 것들이 나와 있네?”라고 무심히 지나쳤다. 함박눈이 쏟아지면서 환상의 주인공들이 깜짝쇼를 준비했던 것. 추울수록 신나는 녀석들의 정체는 뭘까. 먼 나라에서 죽지가 아프도록 날아왔다. 그렇게 터 잡은 보금자리도 풀덤불 갈대숲이었지만 오늘처럼 눈이 쌓이면 용감하게 뛰쳐나온다. 누구든지 한겨울 얼음을 뚫고 자맥질은 어림없다. 동영상 찍어 볼륨을 키우면 그보다 신나는 겨울 놀이도 없으려니. 높파람에 갈대가 흔들리면 물 차렵이불이 펼쳐진다. 가만히 있을 때는 둥주리에 웅크린 암탉을 보는 듯 잔잔한데, 섣달도 스무날 냉수마찰도 아니고 맨발로 어쩜 그렇게 태연자약인지. 우리 또한 물오리처럼 겨울을 나야 될 거라면 방법은 하나 정면 돌파일 게다. 그렇더라도 어찌 저렇게 꿋꿋한 거지? 변변한 외투 한 벌 없이 물속을 헤집는 것만 봐도 오싹해진다. 하기야 특별 방수 시설이 탑재된 물갈퀴가 있다. 지구상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방수복과 자맥질에 얼음도 배겨나질 못하나 보다. 다리께서 보면 손바닥만한 것들이, 독수리보다 알바트로스보다 강심장이다. 외모는 떨어져도 한겨울 물속에서 자맥질을 뽐내는 것은 그들 뿐이겠거니. 아무리 난공불락의 성채도 그들에게는 한나절 놀이터다. 특별히 이방 나라 찾아온 떠돌이가 텃새를 몰아내고 진치고 있다. 들어온 돌이 박힌 돌 빼낸다고 괘씸죄보다는 남의 나라 땅이지만 꿋꿋이 사는 게 대견하다. 아무렴 한겨울 헤엄치는 새가 근동에 또 있을까. 기슭에 모인 녀석들은 얼음을 지친다. 누군가“모여!”하고 외치면 즉각 달려왔겠지. 물오리의 고향은 눈 쌓인 겨울 벌판이었다. 말도 통하지 않고 어딘지도 모를 이방 나라 철새지만 눈썰매장을 보는 듯 시끌벅적할 때는 나까지도 신난다. 겨울 최고의 로망은 냇가의 물오리였다고. 운명도 그렇게 괴롭히지만, 물오리가 있는 한 추위쯤은 너끈할 테니 인생의 자맥질도 계속되리라. 그렇게 추운 날 동치미를 꺼냈다. 애기들 엉덩짝같이 뽀얀 무 토막을 썰어서 탕기에 담았다. 푸짐하고 맛깔스럽다. 처마 끝에는 고드름이 짱짱 달렸다. 김장이 끝나고도 한 달이 지닌 섣달에 비로소 맛이 든다. 항아리 속에서 올망졸망 살림살이가 작은 천국을 보는 듯 소꿉장난처럼 행복했을까. 초겨울까지 무덤덤했다가 비로소 익는 동치미나 겨울에도 의기양양 헤집던 물오리를 보면 초록은 동색이다. 둘 다 추위에 맹렬한 스타일이다. 혹한에도 아랑곳없이 용감무쌍 뛰쳐나오던 물오리처럼. 항아리 속 동치미도 서로 껴안은 채 자맥질이고 헤엄치기였다. 썰다 보면 툭툭 삐져나온 살피듬과 가느다란 뿌리가 물갈퀴를 닮았기 때문에. 추운 날도 물오리 다니는 길은 녹아 있었다. 동치미가 든 오짓독의 가온자리도 헤엄치기 딱 좋게 살얼음만 잡혔다. 물오리도 대여섯 마리씩 많을 때는 수십 마리씩 패를 지으면서 오종종 휘젓고 다녔을 테지? 방수복 방한복에 물갈퀴 시스템도 대단하지만 크지도 않은 새들이 서로가 쓰담쓰담 체온을 나눈다. 줄곧 봐도 혼자 외로운 물오리는 없었다. 한 마리는 동사할 수 있지만, 체온과 체온의 만남은 기적을 낳는다.  눈 속에서 세 사람이 길을 잃었다. 그 중 하나가 기진맥진 쓰러졌다. 한 사람은 부축해 가려 했으나 다른 친구는 그럴 수 없다면서 머리를 흔들었다.    남은 사람은 친구를 들쳐 업었다. 땀이 비 오듯 하면서 온몸에 훈기가 돌았다. 그렇게 얼마쯤 갔을까. 외면하고 떠난 친구가 눈 속에 쓰러진 채 죽어 있다. 숲속을 빠져나오는 동안 등에 업힌 친구도 기력을 되찾았다. 엄청난 눈보라에도 두 사람의 온기가 만나면서 동사를 면했다.  장정이다. 무거웠으련만 우정 이상의 뭔가가 있었다. 추울수록 온기를 축적했다.    혹한의 날들에서 삶의 진수가 나온다. 성공은 시련을 끌어안는 자의 특권이다. 해마다 겨울이면 이방 나라 같은 냇가의 풍경에서 깨우치는 섭리다. 사시사철 지나가면서 봐도 눈 쌓이는 겨울이 훨씬 고답적이었거늘.  추위는 아직 멀었으나 물오리처럼 덤비는 거다. 인생의 초강력 백신은 고난과 역경이다. 쓰러진 친구를 업고 가다가는 같이 죽을 수 있어도, 함께 살아날 확률도 높아진다. 항아리 속의 무조차도 끌어안는 체온 나눔으로 동사를 면했다, 자그마한 물오리도 맹렬 모드로 나가면서 무사히 겨울을 난 것처럼.     해거름이 되고 나는 북극을 옮겨 놓은 것처럼 예쁘장한 냇가의 스케치를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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