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야당이 탄핵한 고위공직자들이 헌법재판소에 의해 줄줄이 기각되고 있다. 줄 탄핵으로 인한 업무 공백과 후유증은 심각한 수준이다. 거대 야당에 의해 탄핵 된 공직자가 줄줄이 복귀하게 되자 사태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비난이 거세게 일고 있다.
이전투구의 지금 정치는 국민은 안주에도 없다. 여야 모두 곧 있을 두 개의 사법부 결정에 온 정신이 쏠려 있을 뿐 민생은 뒷전이다. 양 진영은 머지않아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26일로 예정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선거법 위반 항소심 판결에 매달려 있을 뿐이다. 사법 영역의 결정이 각 진영의 정점에 있는 두 명의 운명뿐 아니라 정치판 전체의 명운을 좌우하는 형국이다. 이 과정에서 너나 할 것 없이 툭하면 법 앞으로 내달리는 ‘정치의 사법화’가 그 극한에 달했다. 무엇보다 질서를 잡아야 할 사법부가 정치의 주요 행위자가 돼버리면서 ‘사법의 정치화’도 위험수위다.
거대 야당이 대통령, 국무총리, 감사원장, 장관을 비롯한 고위공직자를 상대로 29회 차례나 탄핵했고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여야가 서로 고발한 국회의원의 숫자만 33명에 달한다. 기가 막히는 현상이다. 비상 계엄사태 이후 내란 수사에 수사기관끼리 경쟁적으로 수사하면서 군 수뇌부가 모조리 구속되어 안보 부재로 국민은 불안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 군 기강이 해이 해져 공군 오폭 사고에 이어 무인비행기 드럼이 헬기 충돌사고는 총체적 위기이다. 어느 때부터인가 판사의 정치적 성향을 따지는 건 디폴트값이 돼버렸다.
이젠 판결의 정점에 있는 대법원장, 대법관, 헌법재판관에게도 ‘너는 어디 편이냐’고 묻는 게 일상화됐다. 법적 논리에 따른 옳고 그름을 떠나 진영이란 색안경을 낀 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의심부터 한다. ‘대행의 대행’이 상징하듯 행정부는 마비되다시피 했다. 입법부는 사법부를 정치화하며 오염시키고 있다. 사법부 또한 여러 의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민주주의의 진리로 통했다. 그 어느 때보다 개헌이 필요하다고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이들이 많은 것은 이런 문제의식 때문이다.
한국 사회의 병리 현상을 고치려면 환부만 도려내는 정도로는 불가능하다. “독일 연방 헌법재판소처럼 국회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재판관을 뽑으면 여야가 서로 비토권을 갖게 된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진영 논리로 갈라진 양극화는 사회악이다. 정치권 각성 없이 나라는 벼랑 끝으로 달릴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