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제일교회(위임목사 박동한)의 구 석조예배당이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로부터 한국기독교 사적 제50호로 지정됐다.이와 함께 1926년부터 1970년대까지 작성된 당회록과 제직회록 등 주요 기록문서 10권은 한국기독교 유물 제17호로 지정됐다. 유물로 지정된 문서들은 경주제일교회 당회록 2권(제17-1호), 제직회록 5권(제17-2호), 공동의회록 1권(제17-3호), 남전도회록 2권이다. 경주제일교회는 각각 사적과 유물로 지정된 것을 기념하는 ‘총회 지정예식’을 오는 11일 오후 3시 교회 본당에서 개최한다.이번에 사적으로 지정된 구 석조예배당은 1952년 지어졌다. 이 예배당은 총회역사위원회가 그동안 한국 교회 예배당 건축의 변천사에 주목하고 특별한 역사적, 건축적 의미가 있는 예배당을 사적으로 지정해 온 것에 부합하는 건축물로, 사적 지정의 가치와 근거를 지닌다. 이 예배당은 1948년 당회 결의 후 1949년 건축위원회 조직, 1950년 착공하는 공사 과정을 겪었다. 해방 후 교회가 어려운 형편에서도 공사를 시작했으나 6.25전쟁으로 건축에 사용되는 모든 목재가 징발돼 부득이 공사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전쟁 중임에도 전체 교인들이 연보하고 헌신해 완공한 건축물로, 이는 한국 교회 헌신의 역사를 함축적으로 보여 준다. 해방 공간과 6.25 전쟁의 고난 가운데 완공된 구 석조 예배당은 한국교회 재건의 역사성과 건축적 희소성을 동시에 갖춘 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경주제일교회 구 석조 예배당이 갖는 또 다른 의미는 그 터가 가지고 있는 역사성에 있다. 교회는 1909년 경주 지역 최초의 근대 교육 기관으로 미션학교인 계남학교를 세워 지역 사회 근대 교육과 신문화 전파에 노력하는가 하면, 경주 지역 3.1운동 당시, 목판으로 제작한 태극기 배포를 위해 집결한 장소였다. 또 1952년부터는 이곳에서 성경구락부가 운영되기도 했던 또 다른 역사의 기억 회상 현장이기도 하다.
이번에 함께 지정된 기독교 유물은 1926년부터 1970년대까지 작성된 당회록, 제직회록, 공동의회록, 남전도회록 등 총 10권으로 일제강점기 교회 탄압과 해방 후 교회 재건의 흐름을 생생히 담고 있다. 1936년부터 1969년까지 기록된 ‘당회록’은 교회 행정과 조직, 일제강점기 후반 일제의 교회 핍박, 해방 공간과 한국전쟁 시기의 고난과 교회 재건, 지역 교회 분립 개척 등의 내용들을 살펴볼 수 있어 지역 교회 역사를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로서 문헌적 가치를 지닌다. ‘제직회록’은 1926년부터 1961년까지의 기록물로 당회록에 기재돼 있지 않은 교회 업무의 제반 사항들이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공동의회록’은 1954년부터 1976까지의 기록물이고 ‘남전도회록’은 1931년에서 1949년까지의 기록물이다. ‘남전도회록’은 교회 역사관 설치를 위한 자료 수집 과정에서 새롭게 발굴된 문서다. 박동한 경주제일교회 위임목사는 “이번 두 가지 지정은 한국교회가 걸어온 믿음의 시간에 대한 공적 인정으로 여기고 있다. 이를 계기로 교회 역사관 개관을 비롯 3.1운동 관련 공연, 순례길 조성 등을 통해 지역사회, 시민과 함께 교회를 확장해가는 전환점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한편 경주제일교회는 교회 창립 120주년을 맞아 수집된 역사자료를 기반으로 교회 역사관 개관을 준비 중이다. 이미 디지털화된 회의록, 사진 자료, 내부 간행물, 계남학교 관련 사료 등이 체계적으로 정리돼 있으며 앞으로 사전 예약을 통해 자료실을 일반에 개방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