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십 여 년 전만 하여도 조기 교육 열풍이 한바탕 불어왔었다. 자녀들이 코흘리개만 면해도 너도나도 외국으로 유학 보내는 게 유행이었다. 이는 마치 부모라면 으레 자식 장래를 위하여 행해야 할 도리로 여기기도 했다. 형편이 여의치 않아 국내 학교 교육만 시키는 부모는 늘 자식 앞에서 무능함을 자책하기 일쑤였다. 지난날 큰 딸아이가 우수한 성적으로 음악 대학에 입학을 하였다. 그 기쁨도 잠시, 딸아이가 대학을 졸업 후 유학 보낼 생각에 지레 가슴이 무거웠었다. 당시 외국 유학비용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조기 유학 뿐 만 아니라 상급학교 졸업 후 외국 유학을 다녀와야 어디서든 스펙을 인정받는 분위기였다. 특히 영어가 세계 공통어로 인식 돼서인지 어린아이들도 일찌감치 영어 습득을 위하여 외국으로 조기 유학을 보내는 바람이 거세게 불었던 것이다. 심지어는 부모 중 어머니가 아이 뒷바라지를 위해 보따리를 싸가지고 아예 아이들과 함께 외국으로 출국하기도 했다. 이런 연유로 국내에 홀로 남은 기러기 아빠들이 상당수였다. 이로보아 우리나라 부모들은 자녀들에 대한 교육열은 뜨겁다 못해 극성에 가깝기도 하다. 베이비부머 세대인 우리 부모님들 만해도 그러했다. 시골에선 논 팔고 소 팔아 자식들을 도회지 대학에 보낼 정도였다. 오죽하면 대학을 지성의 상아탑이 아닌 우골탑(牛骨塔)이라고 칭했을까? 시대에 따라 불어오는 바람을 삶 속에서 무시할 수 없는 노릇인 것 같다. 요즘은 어떤가. 시대적 바람을 크게 나눈다면 만혼이 유행하고, 아이 낳기를 꺼려하거나 아예 딩크족들이 늘어나잖은가. 또한 고령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인공 지능 시대가 열렸으며, 로봇의 등장과 AI 시대로서 사람들 일자리가 줄어드는 추세다. 이런 세상에 사노라니 문득 지난날 전국을 강타했던 유행가의 제목이 궁금해진다. 문학이든 유행가든 제목을 붙이는데도 유행이 있나보다. 얼마 전만 하여도 수필집인 경우, 서술문형의 긴 제목이 유행한 적 있다. 일예로 유행가인 경우, 이용이 부른 ‘바람이려오’(1981년), 정수라의 ‘바람이었나’(1983년)에 이어서 무명이었던 김범룡을 일약 스타덤에 올린 노래 ‘바람, 바람, 바람’(1985년)이 상승기류를 타기도 했다. 어디 이뿐인가.    그 시절엔 어인일인지 유행가 제목이 온통 바람 투성이어서 그야말로 이런 제목의 유행가들이 태풍권에 들었다고나 할까. 1988년도 한반도에 불어온 바람 가요는 백미현, 신현대가 부른 ‘난 바람, 넌 눈물’을 비롯 소방차의 ‘하얀 바람’, 박남정의 ‘아! 바람이여’, 신형원의 ‘예기치 않은 바람’ 등이 있다. 특히 필자 애창곡은 박남정의 ‘아! 바람이여’이다. 이 노래는 곡도 가슴을 어루만져주지만 가사역시 시어 적 이어서다. ‘그늘도 없는 / 앙상한 나뭇가지에/ 우연히 날아왔다 / 스치고 가버린/ 너무도 야속한/ 아! 바람이여/별빛에 물들어도/ 안개에 싸여도/ 잎새를 피웠어요/ 꿈을 키웠어요/ 영원한 보금자리/ 짓지 않을 바엔/ 머물지나 말지/ 가지를 흔들어놓고’ 유행가는 곡조도 중요하지만 가사역시 심금에 와 닿아야 한다는 개인적 생각이다. 위 노래는 애조를 띤 곡조가 매우 호소력이 짙다. 가사 또한 감성을 자극한다. 가사를 살펴보면 왠지 애절하다. 나목에 불어온 미풍이련만 화자인 나무는 자신을 흔들고 떠나버린 바람을 그리워하잖은가. 삶을 살며 우린 숱하게 곁을 스치는 온갖 바람에 때론 흔들리곤 한다. 필자도 이런 경험이 있다. 학창 시절 한 때는 필자를 뒤흔드는 바람 기류에 휩쓸려 정신이 혼미한 적이 있었다. 우표 수집이 그것이었다. 날만 새면 우체국을 쥐구멍에 생쥐 드나들 듯 드나들었다. 자나 깨나 눈앞에 어른거리는 우표 때문에 잠을 못 이룰 정도였다. 그러나 ‘시대의 화석’이라 칭할 우표 수집도 결혼과 함께 시들해졌다. 결혼 후에는 찻잔을 수집하는 취미에 몰입 했었다. 하지만 이런 열정도 수년을 지탱하지 못했다. 온 집안에 갖가지 형태인 찻잔이 모아지자 보관할 자리가 마땅치 않았다. 뿐만 아니라 잦은 이사에 거추장스런 짐으로 변했다. 아이들이 태어나자 정신없이 동화책을 사들였다. 중고 책, 신작 할 것 없이 그렇게 모아온 동화책이 수 백 권에 이르렀다. 이 덕분에 딸아이들이 어려서 책을 가까이 하는 이점이 있었다. 이 또한 아이들이 성장하자 보관할 곳이 마땅치 않아 이웃에 나눠주었다. 돌이켜보니 필자는 매사 호기심이 많은 성향인가 보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신기성(新奇性)의 바람 앞에선 늘 휩쓸리고 흔들렸잖은가. 이즈음엔 국내이든, 외국이든 마음 내킬 때마다 여행을 떠나고 싶다. 가슴에 이 바람이 불어 닥친 이상 언제이고 여행 가방을 챙기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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