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태광그룹 비자금, 청목회 입법 로비 등 검찰이 의욕적으로 시작한 사정(司正) 수사가 뚜렷한 성과 없이 해를 넘겼다.
수사 초기 대대적인 압수수색과 소환조사에도 불구하고 의혹을 규명할 핵심 증거 확보에는 실패했다는 평가다. 검찰이 '성역 없는 수사'를 외쳤지만 정관계 로비 등 의혹의 몸통규명은 사실상 어렵게 되지 않았느냐는 관측이다.
정·재계는 검찰 수사로 인해 정상적인 활동이 지장을 받고 있다며 역공을 준비하고 있다. 검찰이 원하던 성과를 내지 못하자 별건·압박 수사를 벌이고 있다며 검찰을 압박하는 형국이다.
◇한화·태광그룹 비자금
한화·태광그룹 비자금 의혹 수사는 답보 상태다. 몸통인 정관계 로비 의혹 등은 수사 대상에서 제외돼 '용두사미'란 지적마저 나온다.
서울서부지검 형사5부(부장검사 이원곤)는 수사 초기 대대적인 압수수색과 소환조사에도 불구하고 의혹을 규명할 핵심 증거 확보에 난항을 겪고 있다. 핵심 관계자들의 신병 처리 여부도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검찰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을 3차례 소환조사했지만 신병처리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특수수사의 경우 통상 1~2회 소환한 뒤 신병처리를 결정했던 관행과 배치되는 결과다.
앞서 검찰이 한화그룹 비자금 의혹을 규명할 핵심 인물로 지목한 홍동옥 전 한화그룹 자금담당임원(CFO)에 대한 구속영장이 '방어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로 기각돼 수사에 타격을 입혔다. 영장 재청구를 검토하고 있지만 발부 여부는 불투명한 상태다.
한유통 등 검찰이 위장계열사로 주장하는 회사들에 대한 압수수색은 별건수사·압박수사라는 역풍을 불러왔다. 김 회장의 자녀들의 재산 축적 과정의 불법성 여부까지 수사가 확대되면서 재계는 조직적으로 반발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한편, 검찰은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과 이 회장의 모친인 이선애 태광산업 상무에 대서는 소환 일정도 확정하지 못한 상태다.
비자금 조성 의혹의 핵심 인물로 알려진 이 상무는 신병을 핑계로 검찰의 소환 통보에 응하지 않고 있다. 이 회장에 대해서는 이달 초 소환이 이뤄질 것으로 알려졌으나 검찰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검찰은 이 회장의 모친의 자택, 은행 대여금고 등을 압수수색하고 오용일 태광산업 부회장 등 그룹 핵심관계자들을 연이어 소환조사했지만 의혹을 규명할 핵심 진술은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검찰은 지난 2009년 청와대 행정관 성접대 사건과 관련, 그룹차원의 로비 의혹을 입증하는 사실상 새로운 진술이 제시됐음에도 '비자금 의혹이 우선이다'며 재수사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청목회 입법로비
지난해 10월26일 서울북부지검 형사6부(부장검사 김태철)는 청목회 간부 11명을 체포하면서 본격적으로 청목회 '입법로비' 수사를 시작했다.
국회 회기 중이던 11월5일 연루된 현역 의원 11명의 후원회 사무실 20여 곳을 압수수색하는 등 수사초기 검찰은 유례없는 초강수를 뒀다. 지난달에는 이들 의원 중 받은 후원금 액수가 크고 '대가성' 의혹이 짙은 6명의 현역 의원에 대한 소환조사도 이뤄졌다.
12월19일과 21일 한나라당 조진형·유정현·권경석 의원, 24일에는 민주당 최규식·강기정 의원과 자유선진당 이명수 의원이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검찰에 따르면 최규식 의원은 5000만원, 이명수·권경석 의원은 2000만원, 강기정·유정현·권경석 의원은 1000만원을 각각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들 의원에 대한 사법처리 여부는 소환 조사 뒤 일주일을 넘겼지만 진행되지 않고 있다.
검찰 안팎에서는 해를 넘기기 전에 소환된 의원 6명에 대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를 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지만 빗나갔다. 현역 의원 6명에 대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외에 '뇌물수수' 혐의를 적용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에 빠졌다는 분석이다.
뇌물수수 혐의가 적용되면 해당의원이 의원직을 상실할 수 있어 검찰이 정치적 고려를 하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수사과정서 '무원칙한 표적수사'라고 반발하던 민주당 강기정 의원은 지난해 12월30일 자신의 홈페이지 의정일기를 통해 '청목회 수사의 4가지 오류'라는 글을 올려 검찰을 압박했다.
해를 넘긴 검찰의 정·재계 수사가 '법대로' 처리될 지 새해 첫머리 재경지검들의 고민이 커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