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으로 나는, 우리는 타인을 사랑할 수 있을까?타인의 행복을 바라며 사람들에게 공덕과 이익을 베푸는 ‘이타(利他)’를 주제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를 위로하고 다잡아주며 깊은 메시지를 던지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독일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는 이광 작가가 경주에선 첫 전시를 펼쳤다. ‘김현감호 호랑이 여자의 신들린 사랑’ 전이 갤러리 아래헌에서 7월 20일까지 열린다. 디스토피아와 같은 현실 세계에서 이타의 마음과 행위야말로 바르게 사는 힘을 주는 경지일텐데 바로 작가 이광의 그림이 그러하다.
작가 이광은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1998년 독일로 이주해 쿤스트아카데미 뒤셀도르프에서 독일 신표현주의의 거장 마커스 뤼퍼츠 교수에게 회화를 공부하고 2006년 마이스터슐러수제자 인증을 수여 받았다.신표현주의 사조와 기법을 익힌 이 작가는 유럽 회화 전통과 동양철학, 한국인의 기질을 접목하는 데 관심을 뒀다. 이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신표현주의에서 다루는 사회적 문제나 역사 등을 반영해 설화라든가 배경적인 것, 전통과의 결합에서는 한국적인 것을 다뤘다.
전시의 주제는 영혼의 연민, 영혼들간의 사랑으로 연민과 사랑을 다루고 있다. 화면을 덮는 무지개색, 오방색 등 단순하면서도 영적이고 따뜻한 색감과 그림 속에 나오는 다양한 영혼들의 아이콘들은 어떤 신명을 느끼게도 해준다.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동시에 탐구하는 작가의 작업은 고통의 통렬한 수용을 통해 그것으로부터의 해방을 꿈꾸는 예술적 열정의 결과로 보여진다. 이번 전시 주요 인물로 나타나는 호랑이 여자는 ‘김현감호’ 설화에 등장하는 호랑이 처녀로, 김현을 위해 희생한 호랑이는 작가에게 진한 감명을 던졌다. 진정한 인간에 대한 수호신적인 백호와의 만남이었던 것이다. ‘애이불비-님의 침묵’에서는 피에타처럼 김현이 호랑이 여자를 안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에서 호랑이는 산신이기도 하고 마귀를 물리치는 상징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광 작품에서 호랑이는 다중적인 의미를 가지며 사악한 현실을 정화해 주는 존재로 등장한다.
 
‘살신성인-슬픔의 삼매’에서는 호랑이 여자가 죽은 아이들을 삼매 상태로 저승에 데려다주는 상황을 그렸다. 불교 용어인 삼매는 정신을 하나로 집중해 무념무상 상태가 되는 것을 의미하지만 그에게 삼매는 슬픔의 경지로 슬픔을 도드라지게 드러내고 있다.
작가는 몸을 가진 우리가 몸을 넘어서 타인을 사랑하는 곳에 지극히 머물러 있는 상태의 호랑이를 '삼매'로 여겼다. 쾌락이나 욕망에 끊임없이 끌려다니는 게 삶이 아니라 진실된 정신의 가치를 선택할 수 있는 순간에는 용기를 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호랑이 여자 캐릭터를 최근 많이 작업하고 있다고 했다. 붓을 들고 화폭에 맞서 직시하는 작가 자신이 바로 ‘호랑이 여자’일 것이다.그는 “제 모든 작업 단계는 영감을 통해 흐른다. 이번 전시는 특히 한용운 선생의 시를 많이 인용했다. 식민치하 비통한 심정에서 ‘님’이라는 시어로 절절한 사랑을 노래한 시인처럼 저 역시 신라의 도읍인 경주를 배경으로 이타적인 사랑을 다룬 ‘김현감호’라는 설화를 가져와 이타적인 사랑 즉, 인간이 인간을 정말 얼마나 지극히 사랑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춰 한용운 시에 접목했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또 “놀랍게도 고조선에서 통치이념으로 적용한 ‘홍익인간’이라는 이타정신은 매우 위대한 것이어서 홍익인간이라는 메시지를 많이 녹여냈다”고 설명했다.
최태만 미술평론가는 “이광의 몰입에서 예술의 동인으로 보이는 신들린 광기를 본다. 그의 작품에서는 자유로운 선이 만들어내는 율동, 에너지의 수렴과 확산이 만들어낸 유동하는 선과 색채를 만날 수 있다”면서 “추상과 형상에 얽매이지 않고 그 경계를 넘나든다. 주관적 감정의 표출과 내면적 비전은 화면을 고양된 표현적 열정의 세계로 이끈다”고 평했다. 이 작가는 경주에서의 첫 전시에 대해 “전인체적 ‘화랑’도 단군의 통치이념 등 중요한 전통을 계승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라 여겼고, 사랑에 빠진 ‘김현감호’ 설화 등이 경주에서 좋은 화학작용을 낼 것으로 보여 전시를 하게 됐다”고 전했다.
앞으로의 작업에 대해선 “우리나라의 진정한 회화는 전통과의 관계와 밀접하다. 디지털 미디어, AI 시대에 미술계 혁신적 변형이 일어나고 있는데 전통수묵화나 우리 전통 그림들도 향후 대변혁을 맞이할 것”이라며 “정신적인 힘을 보여줄 수 있는 예술, 한국의 전통 양식과 미래 미술 양식이 훌륭한 결합을 이루는 작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