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대 대선 사전투표 현장에서 벌어진 '이미 기표된 투표용지 봉투' 사건은 단순한 행정 실수가 아니었다. 유권자의 소중한 한 표가 투표소 내부의 관리 미숙으로 왜곡될 수 있음을 보여준 충격적인 사례였다. 경찰 수사 결과, 해당 사건은 유권자의 자작극이 아닌 투표사무원의 실수로 밝혀졌다. 그러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사건 초기부터 자작극 의심이라는 단정을 통해 A 씨를 사실상 범죄자로 몰아세웠다. 이는 국가기관으로서 결코 해서는 안 될 무책임한 발표였다.선관위는 경찰 수사 결과가 나오기 전부터 '선거질서를 문란하게 하려는 의도'라는 표현까지 사용하며 유권자를 매도했다. 그러나 경찰은 회송용 봉투가 2장 교부되는 과정에서 행정 실수가 있었음을 확인했고, CCTV 영상과 지문·DNA 감식을 통해 자작극 가능성을 부정했다. 명백한 선관위 내부 실책임이 드러난 것이다.문제는 이러한 실수가 단순한 행정 착오를 넘어 국민적 신뢰 훼손으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선거의 공정성과 투명성은 민주주의의 근간이다. 그 신뢰가 무너질 때, 민주주의 제도 전체가 흔들린다. 선관위는 유권자의 투표권을 수호하고 선거의 중립성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에서 보여준 선관위의 경솔한 대응은 심각한 우려를 자아낸다.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경찰 발표 이후 '관리상 일부 미흡했다'며 유권자에게 유감을 표명했다. 그러나 단순 유감 표명으로 끝날 사안이 아니다. 이 사건은 선관위 시스템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대대적인 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회송용 봉투 이중 교부, 사무원의 오개부 실수 등은 단순 해프닝이 아니라 구조적 관리 실패의 증거다.더욱 심각한 문제는 사건 발생 직후 선관위와 일부 언론이 마치 유권자가 계획적으로 선거질서를 교란한 것처럼 몰아간 점이다. 수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유권자를 범죄자로 지목하는 것은 헌법기관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이며, 이는 명예훼손과 무고죄 성립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이번 사건을 바라보며 필자는 한 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다. 이 사건이 사실이라면 과연 이 선거는 유효한가. 법리적으로 볼 때 선거무효 소송은 선거 결과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절차적 하자가 있을 때 가능하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만으로 선거무효를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사전투표 절차에 중대한 결함이 존재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이 사건이 단순 실수로 끝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따라서 이번 사태를 계기로 다음과 같은 제도개선이 시급하다.첫째, 사전투표 제도를 폐지하고 본투표일을 이틀로 확대해야 한다.둘째, 모든 투표소에서 투표관리관이 반드시 투표용지에 직접 도장을 날인해야 한다.셋째, 선관위 내부 책임 구조를 명확히 재정비해야 한다.넷째, 투표 절차의 안전장치를 기술적으로 보완해야 한다.다섯째, 향후 유사 사건 발생 시 사실관계가 확정되기 전까지 중립성과 신중함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민주주의는 제도 그 자체보다 절차의 신뢰 위에 유지된다. 이번 사건이 남긴 뼈아픈 교훈을 선관위와 정치권 모두 깊이 새겨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국민은 언제든지 다시 같은 질문을 던질 것이다. 과연 내 주권과 권력의 한 표는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