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계가 고물가로 소비자들이 상품 가격에 한층 예민해지면서 '가격역설계'에 나섰다.가격역설계는 상품을 기획할 때 판매가를 먼저 정하는 것이다. 원가와 이윤은 정해진 판매가에 맞춰 조정한다. 
 
원가와 이윤에 따라 판매가를 정하는 통상적인 가격 책정 방식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이윤을 일부 포기하는 대신 '박리다매'식으로 판매량을 늘리거나 신규 고객을 유치하려는 '불황형 대응 전략'인 셈이다.23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이마트는 최근 5980원 초저가 위스키 '저스트 포 하이볼'(Just for Highball)를 선보였다. '음식점에서 판매되는 소주 가격대(약 5000∼7000원) 위스키'를 목표로 한 가격역설계 상품이다. 하이볼용 위스키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현재 시판 중인 위스키 원액 중에선 최저가에 속한다. 
 
해당 위스키로 만들 수 있는 하이볼은 355㎖ 잔 기준으로 8잔 안팎이다. 한잔당 800원이 채 안 되는 수준이다. 제조 원가를 낮추고자 용기도 유리병이 아닌 페트병으로 제작했다.이마트가 지난 4월 LG생활건강과 함께 내놓은 스킨케어 화장품 '글로우:업 바이 비욘드'도 가격역설계 사례다. 8종 모두 4950원으로 균일가 생활용품 매장 다이소에서 판매하는 소용량 화장품 못지않은 가격이다. 품질과 가격에만 집중한다는 취지로 제품 포장을 단순화하는 한편 인공지능(AI) 모델 등을 활용해 마케팅 비용도 최소화했다.소비자들의 반응도 좋은 편이다. 지난 4월 18일 출시 이래 이달 15일까지 두달 간 3만2000여개가 판매되며 이마트 스킨케어 전체 매출을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배 가까이 끌어올렸다.이마트가 운영하는 자체 브랜드(PB) 노브랜드는 2만9980원짜리 운동화를 출시해 화제를 모았다. 출범 10주년을 맞은 노브랜드가 운동화 상품을 선보인 것은 처음이다. 상품 기획 당시 불필요한 기능성을 줄인, 편안하고 통기성 좋은 여름용 신발 제작을 목표로 하되 판매가는 소비자의 거부감이 적은 3만원 미만으로 맞췄다.롯데마트의 경우 주로 먹거리 상품에서 가격역설계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 지난 4월 출시한 1000원짜리 PB 두부와 콩나물(이상 300g)이 대표적인 사례다.롯데마트는 기획 단계에서 판매가를 1000원으로 책정한 뒤 관련 협력사로부터 일정 규모 이상을 매입하는 조건으로 원가와 이윤을 맞췄다. 일반 상품 대비 50% 이상 저렴한 가격이 눈길을 끌며 해당 상품군에서 판매량 상위 5위 안에 들 정도로 많은 소비자의 선택을 받고 있다.가격역설계 균일가 델리의 원조 격인 이랜드킴스클럽의 '델리 바이 애슐리'는 출시 1년 만에 누적 판매량 500만개를 넘어서며 '밀리언셀러'에 등극했다. 편의점에서도 가격역설계를 통한 균일가 상품이 꾸준히 출시되고 있다. CU가 운영하는 880원 육개장, 990원 과자·채소·가공유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2900원짜리 캡슐커피(10개입)를 선보이며 초저가 라인업을 넓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