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군 영해면에서 지난 6월 20일부터 21일까지 양일간 '제154주년 1871영해동학혁명 추모제 학술대회'가 성대히 개최됐다. 1871영해동학혁명기념사업회(위원장 권대천) 주최, 영덕군 후원으로 열려 한국 최초의 동학혁명이자 민주화 운동의 시발점으로 평가받는 영해동학혁명의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하고 현대적 계승 방안을 모색하는 뜻깊은 자리였다.20일 학술대회는 '1871년 영해동학혁명의 재해석과 향후 발전방향'을 대주제로 영덕군 영해면 무형문화재전수관에서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진행됐다. 나행주 건국대 교수가 좌장을 맡은 가운데 신상구 위덕대 교수의 기조강연을 비롯해 4개 주제발표와 심도 있는 토론이 이어졌다.신상구 교수는 기조강연 '동학과 1871년 영해동학혁명'에서 동학의 평등사상과 공동체 정신이 조선 후기 사회 변혁의 단초가 됐으며 영해동학혁명이 한국적 근대화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주목할 만한 발표는 신혜란 인천대 독립운동사연구소 연구원의 '영해동학혁명 그 이후 K-컬처 DNA의 연원을 찾아서'였다. 신 연구원은 영해동학혁명의 민주주의·자주·평등 정신이 현재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한류(K-컬처)의 근간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장우순 국학진흥원 연구원은 '교남공적·영해부적변문축을 통해 본 영해동학혁명'에서 새롭게 번역·공개된 핵심 사료를 바탕으로 영해동학혁명의 실상을 재구성했다.허채봉 부산동학기념사업회 대표는 '1871 영해동학혁명 참여자 연구'를 통해 최시형, 이필제, 강수 등 혁명 지도부와 600여 명 규모의 동학군 조직, 96명의 순교자 명단을 상세히 분석했다. 특히 경북·강원·충청·전라·경기·경남 등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참여자들의 지역 분포를 통해 영해동학혁명이 전국적 규모의 조직적 봉기였음을 입증했다.김영진 경희대 교수는 '신미년(1871) 영해 관아의 공간적 기능'에서 미셸 푸코의 헤테로토피아 이론을 적용해 관아가 권력과 통제의 공간으로 기능했음을 분석했다. 각 주제발표 후 일부 토론자는 '혁명'이라는 명칭의 적절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으나 영해동학혁명이 민중 중심의 정치·사회적 변혁이자 근대적 평등사상을 실천한 최초의 성공적 민주화 운동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21일에는 추모제가 거행돼 154년 전 민주주의와 평등을 위해 목숨을 바친 선열들의 숭고한 뜻을 기렸다. 권대천 기념사업회 위원장은 "영해동학혁명은 우리나라 최초의 성공한 민주혁명"이라며 "선열들의 정신을 계승해 진정한 민주주의 실현에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한편 이번 행사에는 동학 연구자, 역사학자, 시민단체 활동가, 지역민 등이 참석해 영해동학혁명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