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정부의 추가경정예산안 중심에는 ‘배드뱅크’가 있다. 팬데믹과 고금리의 이중고를 견디다 무너진 소상공인들의 부실채권을 정부가 공적 기금을 통해 인수하고, 이를 재조정하거나 조건부로 탕감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소상공인 회생특별기금’을 조성해 약 3조 원 규모의 부실채권을 떠안는 방안을 제시했다. 금융권에서 포기한 채권을 정부가 사들여 회생 가능성이 있는 이들에게 재기의 기회를 주겠다는 구상이다.
실제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1050조 원을 넘고, 그중 약 15%가 연체 또는 부실 위험에 처해 있다. 대구 서문시장, 서울 남대문, 부산 국제시장 등 전통시장에는 빈 점포들이 늘고 있다. “버티다 망했다”는 상인들의 절규는 더 이상 과장이 아니다. 
 
특히 대면 업종에 집중된 소상공인들은 팬데믹의 후폭풍에서 아직도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정부가 공적 개입에 나서는 건 늦었지만 불가피한 선택일 수 있다. 미국, 독일 등도 위기 당시 중소상공인을 위한 공적 부채 조정에 나선 바 있다.
그러나 ‘빚 탕감’이라는 단어에는 항상 그림자가 드리운다. 첫째는 도덕적 해이다. 금융기관에서 이미 회수 불능으로 분류된 채권을 정부가 사들여 사실상 면제해준다면, 성실히 빚을 갚아온 이들에게는 큰 박탈감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나는 이자까지 꼬박꼬박 내며 갚아왔는데, 누구는 못 갚아도 탕감되느냐”는 항의에 정부는 어떤 답을 준비하고 있는가. 실패한 이에게 사다리를 내리는 것과 무책임을 용인하는 것 사이엔 분명한 선이 있다.
둘째는 재정 부담이다. 세수 부족이 누적되는 상황에서 적자 국채까지 발행해 기금을 마련하는 방식은, 결국 국민의 미래 부담으로 이어진다. 정치적 민심을 의식한 선심성 정책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포퓰리즘에 경도된 정책은 일시적인 환심만 남기고, 빚은 다음 세대가 떠안게 되는 구조다.
셋째는 실효성이다. 부실채권을 사들인다고 해서 그 자체로 회수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회수율이 낮고 자금이 묶인다면 손해는 국민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 무엇보다 이런 조치가 반복되면 “언젠가 탕감될 것”이라는 사회적 무장이 고착화될 수 있다. 제도의 남용은 제도 자체를 무력화시킨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단순한 ‘탕감’이 아닌 조건부 회생이다. 회생 가능성이 있고, 책임을 다할 의지가 있는 소상공인에게만 적용되어야 한다. 일정 자산 이하, 창업 교육 이수, 재대출 제한, 자산 공개 등의 요건을 명확히 해 구제 대상과 아닌 이들을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 빚은 도울 수 있어도, 책임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배드뱅크는 그 자체로 선도 악도 아니다. 실패자를 일으키는 회생의 사다리’가 될 수도 있고, 세금을 삼키는 ‘밑빠진 독’이 될 수도 있다. 제도가 어떤 얼굴을 갖게 될지는 정부의 설계와 운용에 달려 있다. 지금 필요한 건 정무적 판단이 아닌, 공정과 신뢰의 원칙이다. 세금을 쓰는 제도일수록, 동정보다 정의가 우선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제도가 사회적 신뢰를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