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이 왜 AI인가?”라는 질문은 언뜻 자연스럽다. 전통적으로 ‘철의 도시’로 각인된 포항이, 그것도 인공지능(AI) 컴퓨팅 인프라라는 최첨단 산업의 거점으로 나서겠다는 선언은 놀라움과 함께 많은 호기심을 낳는다. 하지만 이번 글로벌 AI컴퓨팅센터 구축 MOU 체결을 지켜보며, 오히려 이런 질문은 “왜 이제야 포항이 AI인가”라는 반문으로 돌아온다.포항은 한국 산업화의 전위에 서 있던 도시다. 1970년대 제철소 건설과 함께 국가는 이곳에 자원을 쏟아부었고, 포항은 철강의 수도가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렀다. 고도화된 산업 구조와 탈탄소 흐름, 디지털 전환이라는 거대한 변화 속에서, ‘철’만으로는 지속 가능하지 않은 시대가 온 것이다. 그리고 이제 포항은 그 해답을 ‘AI’에서 찾고 있다.이번 프로젝트의 핵심은 단순한 데이터 저장 공간이나 GPU 집적소가 아니다. 고난도 AI모델 학습과 초대형 언어모델(LLM) 학습, 실시간 데이터 처리까지 가능케 하는 ‘하이퍼스케일’ 인프라의 구축이다. 여기에는 총 2조 원이 투입되며, 4단계에 걸쳐 1GW 규모까지 확장될 계획이다. 이는 단순한 도시 개발이 아닌, 디지털 주권을 지방에서 재정의하는 시도다.게다가 이 사업은 민간 주도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 정부 주도의 국가AI컴퓨팅센터 구축 사업이 잇달아 유찰된 가운데, 포항은 민간 투자와 지방정부의 실행력을 바탕으로 선제적으로 디지털 대전환의 시동을 건 유일한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외국계 자본이 30% 이상 포함됐다는 점은 글로벌 AI 생태계와의 연결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지역 균형발전이라는 정책 목표 측면에서도 이 사업은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 디지털 인프라를 지방으로 확산시키고, 그와 동시에 R&D와 고급 인재 양성, 지역 대학과의 연계까지 유기적으로 이뤄진다면, 단순한 지방투자가 아닌 ‘지역 주도형 혁신 성장’의 전범 사례가 될 수 있다.포항은 이미 포스텍이라는 세계적 연구기관과 함께, 바이오·배터리·로봇 등 분야에서도 AI 융합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이 컴퓨팅센터가 구축되면 국내외 기업들이 R&D 허브를 이전하거나 테스트베드를 구축하는 등 후속 투자 유치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제조업 중심의 도시에 디지털 산업의 뿌리가 함께 내려가는, 그야말로 산업 전환의 결정적 지점이다.물론 과제도 있다. 초고전력 인프라와 냉각 시스템 구축, 전력 사용에 따른 지역 내 수용성, 고급 AI 인재의 장기적인 확보 등 풀어야 할 난제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의지가 있는 도시’에 산업의 미래가 찾아온다는 명제를 다시 생각해볼 때, 지금 포항의 도전은 ‘가능성’ 그 자체로도 평가받을 만하다.철강은 한때 한국 경제의 심장이었다. 이제 AI는 한국 산업의 두뇌가 되려 한다. 포항은 이 두 축을 모두 경험하고 있는 도시다. 산업화의 상징이었던 도시가, 디지털 전환 시대의 선도 도시로 다시 자리매김할 수 있다면, 이는 단지 한 도시의 재도약이 아니라 대한민국 산업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을 예고하는 사건이 될 것이다.포항은 지금, 또 한 번 대한민국 산업 지도를 다시 그리고 있다. 철에서 AI로. 산업의 DNA는 바뀌지 않았다. 그저 진화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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