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는 ‘길거리 박물관’이라 할 정도로 많은 유물들이 곳곳에 널려 있다. 일하고 있는 사무실 창밖을 내다보면 눈앞에 바로 소박하게 보이는 알천 너머로 황룡사와 분황사 터가 자리를 잡고 있는데, 이 또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다. 경주에 터를 잡고 산 지도 꽤 지났음에도 출퇴근하며 이곳을 수십 번 지나치기는 했지만, 땅에 직접 발바닥을 붙인 적은 없다. 그러다 주말에 아내가 경주를 찾았다. 학창 시절 수학여행을 비롯해 여러 이유로 경주를 찾았고, 결혼하여 우리에게 아이가 찾아와 산교육을 시켜줄 요량으로 경주의 이곳저곳을 살피며 다녀봤지만, 아내와 단둘이 고즈넉한 곳을 찾아 여유롭게 발걸음을 옮기는 여행은 처음이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인지라, 재래시장을 찾아 경상도 대표 음식 중의 하나이면서 우리 부부가 좋아하는 음식인 돼지국밥으로 배를 넉넉하게 채운 다음, 근처의 카페에서 팥빙수로 엔도르핀이 팍팍 분출되게 하여 행복감을 최고조로 올린 후 분황사를 찾았다. ‘땀이 등줄기에 송골송골 맺힐 정도로 6월의 때 이른 무더위는 여행의 맛을 조금은 아쉽게 만든다. 분황사 모전석탑을 한 바퀴 돌아보니 석탑 네 면(面)에 각각 돌로 된 문, 즉 석문(石門)이 보인다. 탑의 각 면에 있는 석문은 두 개로 되어 있는데, 두 개의 문 중 하나는 열려 있고 다른 하나는 닫혀 있는 듯하다.    석탑 가까이 다가설 수 없기에 확실치는 않지만 열려 있는 문의 형태는 여닫이문인 듯하다. 반면 닫혀 있는 다른 하나의 문은 미닫이문처럼 보인다. 문 아래에는 밀고 닫기에 편하도록 어렴풋이 레일 형태로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탑의 문은 나무도 아닌 돌로 만들었는데 이렇게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음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러다 두 개의 문이 각기 다른 형태로 만든 이유를 생각해 보니 저절로 무릎을 탁! 칠 정도가 되어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은 석빙고에서 바로 꺼낸 얼음 방울로 바뀐 듯했다. 적어도 지금으로부터 1,400년 전인 634년에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는데….글을 쓸 때 ‘퇴고’란 문을 밀거나(퇴) 닫거나(고)에서 유래 글을 지을 때 마지막 단계에서 여러 번 생각하여 고치고 다듬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를 퇴고(推敲)라 한다. 당나라의 시인 가도(賈島, 779∼843)가 자신의 시를 마무리하며 마지막 연에서 “스님은 달빛 아래 문을 민다.”(승퇴월하문, 僧推月下門)라는 시구를 지을 때 ‘퇴(推, 밀 퇴)’를 ‘고(敲, 두드릴 고)’로 바꿀까 말까 망설였다는 일화에서 이 단어가 나왔다고 한다. 이에 ‘퇴’와 ‘고’는 전혀 유래가 없는데도 문장을 다듬는다는 뜻을 갖게 되었다. 미닫이문을 열기 위해 문을 미는 것과 여닫이문을 열기 위해 문을 두드리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문을 두드리는 것은 남에게 열어 달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고, 미는 것은 스스로 여는 것이다. 문을 열어야 우리는 미지의 세계를 탐험할 수 있다. 호기심이 가득한 인간은 문을 마주할 때마다 이를 열었고, 따라서 문명은 발전했다. 이렇게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기 위해서는 남의 도움을 받아서 하고, 또한 스스로 자신이 해야 한다. 온전한 지식은 연속성과 창의성을 갖추고 있는데, 바로 이 두 가지 방법을 써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이삭 뉴턴의 말처럼 “거인의 어깨 위에서 바라 보”고, 아인슈타인의 “내가 아는 것은 오르지 원 안의 것일 뿐이고, 무한한 원 밖의 것은 알지 못한다.”라는 말처럼 무한히 모르는 것들을 스스로 깨쳐야 진정한 문을 여는 것이다. 분황사 모전석탑을 만든 이름 모를 건축가는 석탑에 ‘퇴고’의 의미를 남겨 당나라 시인 가도가 1,300여 년 전에 시를 쓰며 ‘퇴고’라는 말이 등장했는데, 분황사 모전석탑을 만든 건축가는 이보다 적어도 100년을 더 앞선 시대에 이 의미를 분황사 모전석탑의 석문에 남겼다. 당나라의 가도가 무형의 자산을 만들었다면 신라의 이름 모를 어느 건축가는 이렇게 유형의 자산을 만들어 후대에 남겼다. 아마도 신라의 건축 전문가는 이미 가도의 ‘퇴고’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었고, 그것을 이렇게 유물로 남겼으리라. AI 혁명 시대에 들어선 지금 전기는 무엇보다 중요하고 소중하다. 그런데 AI 데이터센터에 공급되는 전기는 안정적으로 공급되어야 하는데, 한수원에서 원자력으로 만든 에너지가 이에 제격이다. 우리 회사 시큐텍(주)은 이런 원자력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만들 수 있도록 보안 경비에서 제 역할을 하고 있다. 1,400년 전 분황사의 모전석탑으로 남긴 어느 건축가의 찬란한 문화유산처럼 우리 회사도 그런 유산으로 남고 싶다. “모든 초고는 벌레다.”라는 말로 고쳐쓰기를 강조한 노벨상 작가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를 쓰며 수백 번을 고쳤고,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첫 작품 「개미」 또한 백 번이나 넘는 퇴고를 했다 한다. 그런데 그들에게 비교할 수조차 없는 필자는 몇 번의 퇴고로 이 글을 마치며 한없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감히 어디서 ‘일필휘지’를. 그래도 염치라도 있어서 다행이라는 위안을 삼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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