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온통 수제비 구름이다. 뭉게뭉게 구름이 하늘 옹솥에 빼곡하다. 누군가 조약돌을 던진 듯 하늘 냇가에 촘촘 징검다리로 박혔다. 푸른 하늘 새들이 날개를 다쳐도 충분히 딛고 갈 수 있겠다. 새들이 휘갈겨 둔 하늘 일기장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구름은 어디서 저렇게 뽀얀 차돌 건져와 징검다리 박은 거냐고. 구름 동동 수제비는 또 어쩜 그리 저분저분 먹음직스러운 거냐고. 하늘도 여름이면 수제비 타령이었나? 수제비 끓일 때는 들기름에 햇감자 볶은 뒤 반죽을 떠 넣었다. 숟갈도 반죽도 없이 노을 강만한 냄비에 떨어지는 대로 익고 끓는 대로 떠오르더니 동동 구름송이처럼 생긴 그 수제비. 납작한 수제비에 공깃돌 사슬 모양 등 여러 가지다. 하늘에도 배고픈 사람 있었나? 먹을 거라곤 배부를 것도 없는 감자수제비 정도지만 누군가는 해거름 노구솥에도 불을 지핀다. 새파란 냄비에 가득 끓어나는 걸 보면 수제비 엄청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 있을 듯한데. 구름 백조가 날아들면 산새들까지 물수제비를 뜬다. 어느 날 제비 한 마리가 건너편 기슭의 소금쟁이를 보았다. 날씬하고 물 찬 녀석은 잰걸음에 물수제비 띄웠다. 차돌멩이 하나 던지면 통통 토옹 통 둥글려지던 징검다리 위로 해쓱한 동무 얼굴 보였다. 허구한 날 수제비가 질렸다는 목소리. 장이 나쁜지 밀가루에 감자까지 먹는 대로 배앓이였다지. 지금은 맛집을 찾아가야 될 만치 별식인데 가난한 음식이라 그리 질렸던 게지. 밀가루도 흔치 않던 시절이다. 하도 얇은 반죽은 익을 것도 없이 떠오른다. 가뜩이나 헛헛한 속이 멀건 국물에 감질났을 텐데도 욕심은 부리지 않았다. 심지도 곧았지만 구름 수제비 환상을 믿었다. 하늘에서는 바람이 구름 수제비에, 연못가 멧새는 물수제비를 뜨고 노구솥 앞에서는 어머니가 감자수제비 끓이던 날 추억이다. 아침나절 내린 비도 초록비였는지 길섶의 풀도 초록을 달았다. 그즈음에는 구름도 유난히 꽈리가 잡히고 소낙비가 뿌리는 등 날씨까지 식욕을 돋웠다. 아침나절에도 짜르르 쏟아지더니 금방 해가 난다. 여우가 시집가는지 변덕이 죽을 끓이지만, 수제비 한 그릇씩 나눠 먹기 딱 좋은 날이다. 바람도 수제비 총총 떠 넣었다는데. 구름 동동 수제비 동동하면서. 배고픈 시절의 착상치고는 아주 예쁜 말이다. 우리까지 구름 수제비라는 멋진 표현을 전수받았다. 하늘 구름을 몽땅 수제비라고 부르다니. 어느 날 두어 가닥이 꽈리처럼 부풀어 온 하늘을 덮는 것처럼 꿈도 그렇게 새끼 칠 거라면? 저만치 고추잠자리다. 바람에 작은 비행기가 불시착한다. 길섶에 잠자리 하나가 바스러졌다. 어쩐지 변을 당해서 죽은 것 같다. 두엄자리가 보였다. 장맛비 쏟아질 때마다 거름물이 고였을 테지. 나마리 동동 파리 동동 앉을 자리 앉아라. 멀리멀리 가면은 똥물 먹고 죽을라던 상황이 재현된 걸까. 나 어릴 적에는 나마리라고 불렀다. 새까만 젓갈 잠자리에 통통 살찐 밀잠자리 등 많은데 충청도 사투리라 그런지 훨씬 친근하다. 예쁜 꽃 들고 잡으면서도 아무 데나 앉지 말란다. 잘못하면 경을 칠 테니 함부로 굴지 말란다. 날개가 무거울까 봐 담방담방 적시는데 잠시 착각치고는 목숨까지 잃었다. 자연사일 수도 있지만 앉을 자리 몰라도 화를 자초한다. 높이높이 날아도 거미줄에 얽힌다. 간이라도 빼 줄 듯 그 사람도 뒤통수친다. 무섭고 두렵다. 그래그래 나마리동동, 그냥 오래 사귀어 편한 나하구나하구 놀면 병폐는 없으리란 후렴구가 가슴을 친다. 답답하지만 멀리 갔다가 죽는 일은 없을 테니 그게 행복이란다. 알았어. 알았어. 우리도 여기서만 놀 거야. 수제비 구름 보고 구름이 만든 그림자 보고 살면 충청도 나마리 행복은 너끈하다는 메시지. 앉을 자리 몰라 변을 당하는 것도 순진한 나마리였겠지. 다부지지 못해서 속절없이 당할 거라는 연민이 가난한 구름 수제비에 묻어난다. 잠자리가 날기 시작하면 눈에 띄던 수제비 구름 예찬이다. 문득 건너편 산자락에 그림자가 걸렸다. 노을 지는 해거름도 아니고 땅 그늘은 아닐 텐데 턱 하니 걸려 있는 구름 그림자. 감상할 새도 없이 바람에 너울너울 흩어지면서 구름 수제비 반죽으로 엉겼다. 여름이면 강이고 바다에서 증발한 수증기가 꽃구름처럼 봉우리처럼 진을 친다. 바람이 불고 구름 순두부가 피어날 때는 두부를 굳히기 전 몽글몽글한 덩어리 흡사했다. 콩을 갈아서 짜낸 물을 솥에 넣고 약한 불에 젓는다. 마침내 끓어나면서 순두부 구름으로 피어났던 것. 그게 곧 구름 순두부이고 오래전 어머니가 두부를 만들던 때의 풍경이다. 낮에는 뽀얗게 끓인 구름 수제비, 해거름에는 눈부신 황금 수제비에 오늘 같은 날은 또 구름 순두부까지다. 몽우리가 잡히듯 차분한 구름 때문에 참 맛깔스러웠지만 먹기는 힘들었다. 이름처럼 뽀얗게 피어오르던 구름 꽃 때문이다. 구름은 언제든지 여유만만해 보이고 더구나 길을 두고 다투지 않았다. 평생 길을 양보하고 밭두렁 양보해도 백 걸음에 한 마지기뿐인데 먼저 가려고 다투었으면 보글보글 거품이 죄다 깨질 뻔했다. 여름은 특히 구름의 계절이다. 1년을 통틀어 봐도 여름보다 구름이 멋있을 때는 없었다. 구름 순두부도 보릿고개 산날망에서 뜬다. 배고픈 시절에도 식성에 맞춰 먹을 수 있었다. 여름이면 봉우리 같기도 양떼구름 같기도 한, 구름의 최고 호사는 남의 자리 탐내지 않고 천천히 가도 배부른 행복이다. 나도 그렇게 고답적인 삶이었으면 좋겠다. 구름발치 잠자리도 앉을 자리 파악하면서 눈부신 춤사위를 펼치게 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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