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 현관 보꾹 모서리에 작지만 꼼꼼하게 지어진 집이 두 개나 있습니다. 짐작하시겠지만 바로 제비 둥지입니다. 요즈음 도시에서는 제비를 구경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도시 외곽이나 아예 시골로 가면 까만 연미복과 갈색 머플러를 턱 아래에 멋지게 두른 제비가 봄과 함께 돌아옵니다. 시골집에도 몇 년 전에 제비 한 쌍이 날아와 부지런히 진흙과 검불을 물어 날라 멋진 집을 뚝딱 짓더군요. 그 집에서 알을 낳고 품어 네 마리 새끼를 길러냈어요. 
 
머리꼭지에 솜털 보송보송한 새끼들이 어미 아비가 먹이를 물고 오면 노란 주둥이들을 크게 벌리고 서로 먼저 먹겠다고 머리를 흔들어댑니다. 새끼 입에 먹이를 넣어준 제비 부부는 잠시 쉬지도 않고 또 먹이를 구하러 날아갑니다. 해질 무렵 전깃줄에 앉아 쉬고 있는 제비 부부를 보니 사람의 어미가 제 입보다 자식 입에 음식 들어가는 것이 더 배부르다더니 제비라고 다를 게 없구나하고 짠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여름 보내고 떠난 제비가 다음 해에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빈 둥지를 바라며 은근히 걱정도 되고 서운한 맘도 없지 않았는데 작년에 제비가 다시 왔습니다. 그런데 글쎄 이 녀석들이 이미 있는 집에는 눈도 주지 않고 그 옆에다 새로 집을 짓더군요. 다른 제비들보다 좀 늦게 와서인지 급하게 짓느라 원래 있던 빈 집보다 좀 허술해 보이긴 해도 새끼를 낳아 길러 때가 되어 온 가족이 남쪽으로 옮겨갔습니다. 겨울을 나면서 허술한 제비집은 흙이 떨어져 나가고 뼈대인 검불이 드러나고 구멍도 두어 군데 생겼습니다. 
 
올 봄에 또 제비가 왔습니다. 처음부터 있던 튼튼하게 지은 집은 두고 허술한 집에 새 흙을 물어와 구멍난 곳을 메우고, 흙이 떨어질 걸 방비해서 검불도 가져와 흙에 섞어 집을 개비하고 들더군요. 정말 작년에 태어난 그 제비들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저 놈들도 개인적 취향이 분명하구나 하고 속으로 슬며시 웃었습니다. 그러다 사람도 저렇게 뚝딱 집을 지을 수 있으면 요즘 젊은이들이 집이 없어 결혼을 못한다는 문제를 해결하는 건 일도 아닐텐데 하는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도시에서 집은 개별 주택을 제외하면 거의 모양이나 구조가 대동소이한 집에 살고 있을 것입니다. 우후죽순처럼 올라가는 고층아파트나 오피스텔, 혹은 원룸같이 동일구조를 대량으로 지어서 공급한 집들이지요. 나도 그런 저런 아파트 거주자입니다. 밤에는 굳이 의도해서 보려하지 않아도 환하게 불을 밝힌 맞은편 동의 대동소이한 살림살이가 눈에 들어옵니다. 
 
같은 자리에 TV가 놓이고 같은 자리에 소파가 놓인 거실 풍경이 같은 자리에 있는 커다란 유리창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학창 시절 과학실에 놓여서 지날 때마다 무섬증이 들던 인체해부도같단 생각이 듭니다. 건너편에 사는 누군가도 나와 마찬가지로 이쪽을 바라보며 같은 생각을 하겠지요.
양동마을의 살림집을 다룬 다큐 프로를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무첨당(無添堂), 서백당(書百堂), 향단(香壇)과 같이 개성과 취향을 아우른 옛집은 구조에서부터 그 집에 살던 사람들의 성품이나 가치관을 담아 설계되었더군요. 월성 손씨 종택이자 회재 이언적 선생이 태어난 외가집인 서백당(書百堂) 대청 난간에 손을 얹고 앉으면 마음속이 번잡하고 날이 서 힘들 때일지라도 탁 트인 시야에 들어오는, 세월에 닳고 닳아 뾰족함은 다 버리고 이제는 부드러운 곡선으로만 이어지는 안강벌 산의 능선이 마음의 어지러움을 위무하고 자기를 돌아볼 여유를 가지게 할 것 같습니다. 
 
향단(香壇)은 회재선생이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할 때 모친을 돌볼 수 있도록 중종임금이 지어준 집입니다. 이 집은 행랑채, 안채, 사랑채가 모두 한 몸체로 이루어지는 독특한 구조에 안마당도 비교적 좁은데, 이는 연로한 어머니에게 위급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누구든지 빨리 안방에 닿을 수 있도록 하려는 효심을 담고자 하니 당시 일반 양반집과는 좀 다른 구성을 하고 있습니다. 옛집은 각각의 모양새가 다르고 다른 만큼 집에 담긴 이야기도 다양합니다.
집을 의미하는 한자 ‘가(家)’자는 원래 더운 지방의 집 형태를 본뜬 글자라고 들었습니다. 높은 다락을 세운 위에 주거 공간을 만들어 야생동물로부터 안전을 도모하고 다락 밑에는 돼지를 키워 뱀이 다락 위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지은 집 모양을 본뜬 글자라고 합니다. 
 
제비가 비바람을 피해 새끼를 키워낼 집을 진흙과 검불로 소박하게 지은 것처럼 사람도 추위와 더위를 피하고 바깥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게 자식을 기르려고 집을 짓기 시작했겠지요. 시간이 지나며 집 짓는 이의 취향을 반영하기도 하고 나름의 의도를 담게도 되었을 겁니다. 그렇게 지은 집에 대대손손 자손들이 살았고, 그렇기에 객지에 나가 살다가도 언젠가는 돌아갈 쉼터가 집이며 집이 있는 마을이 고향이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집은 어떤 의미일까요? 놓이는 자리에 따라 천양지차로 화폐 가치가 달라지고, 집값의 등락에 따라 사고팔고 새 집으로 옮겨가도 또 그 집의 값이 오르기를 기다려 돈과 교환할 도구로만 남아 있지나 않은지요? 그렇게 한 집에 진드근히 정붙여 살지 못하고 시세염량에 따라 옮겨다니니 현대인에게는 고향이 있을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연히 이웃사촌도 없겠지요. 이것도 현대인이 고독한 까닭 중 하나가 아닐까요?